문화재청 제공
이러한 지역적 특성이 조선사회에서도 이어져 문중과 혈연을 중심으로 한 씨족들 간의 결속이 강화됐고, 이는 조선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성리학과 결합해 더욱 견고해졌다. 안동의 사대부들은 묘제나 제사를 통해 혈연공동체를 더욱 강화했고, 지역사회에 대한 자기 힘의 과시, 그리고 다른 가문에 대한 경쟁으로 묘제나 제사를 위한 건물인 재사를 앞다투어 건축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그마한 암자를 사들이거나 빼앗아 재사로 꾸민 경우도 많았던 것 같다. 남흥재사나 가창재사는 모두 원래 암자나 법당으로 쓰던 건물이었다. 불교를 억압했던 시대였던 만큼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얘기다.
안동의 능동재사(陵洞齋舍)는 안동 권씨의 재사다. 아마도 재사로는 가장 규모가 큰 건물이 아닌가 싶다. 화재도 빈번히 나서 그때마다 후손들이 돈을 모아 다시 지었다. 화재가 난 일이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때마다 새로 지을 수 있었고, 막대한 헌금이 모이는 모습은 다른 문중에 과시용으로도 충분히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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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재사가 살림집을 변형했고 가창재사가 원림을 이루려고 했다면, 능동재사는 서원건축을 재사건축에 적용했다. 누마루에 들어가면 정면에 대청이 있는 큰채가 있고 그 앞에 동재와 서재가 있어 능동재사는 제례공간인 안뜰과, 제례를 준비하는 전사청과 임사청, 관리공간인 주사가 각각 독립적인 마당을 갖고 있다. 이처럼 재사건축은 다양하다.
시인·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