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곡 5000여 곡 작사 반야월 별세
(위)강원 춘천시 소양교 부근에 있는 ‘소양강 처녀’ 노래비와 (하단 왼쪽)이 노래 가사 전문, 2006년 ‘가수의 날’ 기념식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반야월(하단 오른쪽).동아일보DB
고인의 셋째 딸인 가수 박희라 씨(59)는 “오늘 아침에 아버지와 마지막 통화를 했는데 ‘몸이 아프다. 앞으로 내가 하던(가요) 일을 잘 이어서 해라’라고 하셨다”고 전했다.
1917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진해농산고를 수료한 뒤 태평레코드사에서 주관한 콩쿠르에서 입상하면서 가요계에 발을 디뎠다. ‘진방남’이란 예명으로 1938년부터 태평레코드사 전속 가수로 활동하면서 ‘불효자는 웁니다’ ‘꽃마차’ 등을 불러 히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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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비극과 6·25전쟁이 찾아오자 전쟁의 참화에 고통 받던 국민에게 그는 ‘울고 넘는 박달재’ ‘단장의 미아리고개’ 등 완성도 높은 노랫말을 선사하며 민족의 애환을 나눴다. ‘산장의 여인’ ‘소양강 처녀’ 등 5000여 곡의 노랫말이 그의 펜 끝에서 나왔다. 1999년 별세한 작곡가 손목인과는 ‘아빠의 청춘’ ‘여자의 일생’ ‘유정천리’ 등 여러 히트곡을 함께 내놓으면서 명콤비로 불렸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는 “반야월 선생은 대중가요에서 작사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선구자였다. 당대의 시대적 상황을 녹여내 대중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탁월한 노랫말을 지었다”고 말했다. 요즘 젊은 뮤지션들이 자기 일상을 노랫말에 녹이는 사례가 많은데, 고인은 일찌감치 이 같은 작가주의적 작사를 보여줬다는 평가다.
한편으로 그에게는 그림자도 있었다. 데뷔 이후 나라 잃은 민족의 설움을 위로하는 노래로 사랑받았지만 일제강점기 말엔 친일 가요인 ‘소년초’ ‘결전 태평양’ ‘일억 총진군’ 등을 불러 오점을 남겼다. 2010년 그는 “친일 군국가요를 부른 것을 매우 후회하며 국민께 사과 드린다”고 말했다.
‘진방남’이라는 예명으로 가수활동을 하던 시절 ‘꽃마차’ ‘불효자는 웁니다’ 등을 담은 음반의 표지를 장식한 반야월.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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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전국에 가장 많은 노래비가 세워진 인물로 기록되기도 했다. 1993년 ‘내 고향 마산항’을 시작으로 ‘단장의 미아리고개’ ‘울고 넘는 박달재’ ‘만리포 사랑’ ‘소양강 처녀’ ‘삼천포 아가씨’ ‘산장의 여인’ ‘무너진 사랑탑’ 등 전국에 세워진 그의 노래비가 10여 개에 이른다.
창작생활 한편으로 마산방송국 문예부장, 한국가요작가동지회 종신회장, 한국음악저작권협회 고문, 한국전통가요사랑뿌리회장 등을 역임했고 가요계에 기여한 공로로 KBS특별상, 화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 부인 윤경분 씨(92)와 2남 4녀가 있다. 장례는 5일장으로 치를 예정이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 30일 오전 8시. 02-3010-2230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