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녕 논설위원
민주주의와 선거의 공정성은 불가분의 관계다. 우리나라에 민주주의의 태동(胎動)을 가져온 4·19도 3·15 부정선거가 기폭제가 됐다. 부정선거는 정권까지 붕괴시켰다. 선거의 공정 문제는 그만큼 엄중한 것이다. 그동안 별의별 선거 부정 사례가 있었지만 크게 보면 표를 조작하는 것과 표를 매수하는 것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공직선거법이 수도 없이 바뀌었다. 국가가 선거를 관리하고 선거에 드는 비용까지 부담하는 선거공영제가 확대된 것도 그 때문이다. 그에 비례해 민주주의도 조금씩 진화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여론조사 연령 속이기는 과거의 대리투표와 다를 바 없는 표 조작 성격의 선거 부정이다.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인 것이었다. 요즘은 선거 규칙을 잘 모르는 유권자가 출마 후보 측으로부터 설렁탕 한 그릇을 얻어먹더라도 밥값의 50배까지 물어내야 하는 세상이다. 후보의 사소한 실수도 당선 무효로 귀결될 수 있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우리만 한 것도 아니고” “문자메시지를 보낸 곳이 200곳 정도밖에 안 된다”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재(再)경선을 주장했다. 이 대표는 세월을 거꾸로 살아온 것인가.
이번 여론조사 조작은 통합진보당 내 종북(從北) 성향의 막강 파워를 가진 경기동부연합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이 대표와 통합진보당은 이 정파의 노출에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정당인과 공당(公黨)으로서 민주성이 결여된 것 아닌가.
미국 하버드대 정치철학 교수인 마이클 샌델은 ‘왜 도덕인가?’라는 저서에서 “윤리적 기반을 잃은 정치야말로 국가와 국민의 공공선에 해악을 끼치는 가장 무서운 적”이라고 말했다. 정치인과 공직자의 도덕성이 일반인보다 높아야 하는 이유다. 선거 부정에 대한 이 대표의 대응은 공인(公人)으로서의 도덕성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한명숙 민주당 대표가 선거 부정 사태와 관련해 보인 처신도 적절치 못했다. 이 대표의 지역구 외에 후보 단일화 경선을 치른 다른 곳에서도 통합진보당 측의 여론조사 조작과 금품 제공 같은 부정 의혹이 제기됐는데도 이를 규명하고 잘못을 바로잡으려 시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의혹의 속살이 드러나지 않도록 덮고 당내 관련 후보들의 반발을 무마하기에 급급했다. 그 결과 야권연대는 얻었을지 모르나 민주주의에는 큰 상처를 냈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