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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내 인생을 바꾼 그것]박은주 김영사 대표에게 울림을 준 책

입력 | 2012-03-17 03:00:00

데미안 읽고 자아를, 금강경 2만번 읽고 길을 찾았다




서울 종로구 북촌로 박은주 대표의 집무실 너머 한옥들이 단아하다. 그는 “깨우침의 길 말고는 모두 길다리였다”고 했다. 김미옥 기자 sait@donga.com

《 일곱 살 소녀는 이리저리 꺾이는 골목이 어지러웠다. 집에서 몇 개, 아니 몇십 개의 골목을 지나야 학교에 들어서는지 헤아리기 어려웠다. 도저히 못 다니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밑 남동생이 ‘가이드’를 자처해 다섯 살배기가 누나의 손을 잡아끌었다. 누나가 공부하는 동안 동생은 운동장 한쪽에서 미끄럼을 타며 기다렸다. 수업이 끝나면 다시 동생이 누나의 손을 잡고 집으로 왔다. 초등학교 1학년 박은주(55·김영사 대표)는 그렇게 길을 찾지 못했다. 》
○ 길을 보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40년 넘도록 단 한 번도 다시 펴보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어느 날 무심코 표지를 들춰본 뒤 단숨에 독파했다. 줄거리는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지금도 그때 느낌이 있어요. 다시 읽으면 그 감동이 다 사라져버릴 것 같아요.”

누군가가 그랬다. ‘책 한 권을 읽고 인생이 바뀌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박은주는 그랬다. 데미안을 읽은 뒤 그는 달라졌다.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삶의 목표가 생겼다.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길이 엿보였다. 그것은 13세 학생에게는 거창할지 모르는 자아 완성이라는 길이었다. “그때 어린애가 자아라는 말을 뭘 알았겠어요. 그런데 저에게도 익숙지 않은 자아 완성이라는 말이 내 삶의 중심축이 된 거예요. 나 스스로 완전한 사람이 되는 길로 가고 싶었어요.”

군인인 아버지와 평범한 어머니는 슬하에 5남매를 뒀다. 그는 언제나 모범생에다 반듯했고 아버지에게는 영특한 맏딸이었다. 한 번도 부모의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었다. 부모도 그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았다. 책을 좋아한 아버지 덕에 책장에는 책이 그득했다. 돌이켜 생각하면 늘 책을 읽고 책 속에서 방향을 잡았다. 그러나 데미안만큼 순간적으로 그의 마음과 정신을 온통 사로잡은 책은 다시 없었다.

자아 완성. 하나의 화두(話頭)였을 것이다. 매일 움켜잡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고교 시절은 그저 수학을 남들보다 잘하는 학생으로 대학 입시에 몰두했다. 대학에 들어가서 다시금 ‘세상의 모든 진리를 꿰뚫고 싶다’는 바람이 차올랐다. 이화여대 수학과에 들어갔지만 부전공을 택할 수 있을 때 망설임 없이 철학을 선택한 것도 그 이유였다.

인간과 우주와 정신에 대한 것을 통째로 공부하는 철학. 하지만 대학에서 배우는 철학 과목은 기호학이나 논리학 같은 것들이었다. 자아를 완성시켜줄 깨우침에 대한 갈증은 커져만 갔다. 자연스레 관심이 부처에게로 쏠렸다.

○ 길을 찾다


2009년 여름 어느 날이었다. 여느 날처럼 불교의 ‘금강경(金剛經)’을 소리 내 읽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까지 25년 동안 없었던 일이 벌어졌다. 입으로는 경문(經文)을 읽고 있는데 그 뜻이 머릿속에 좍 펼쳐지는 것이었다. 마치 소설에 빠져 있을 때 눈으로는 글을 따라가고 있지만 머릿속에서는 영화처럼 그 장면이 나래를 펴듯이. ‘아, 2500년 전에 부처는 이런 뜻으로 이 말씀을 하셨구나, 저런 뜻으로 저 말씀을 하셨구나.’ 그냥 저절로 알게 돼버렸다. 데미안을 읽고 자아 완성이라는 진리를 목표로 한 지 40년, 금강경 독송(讀誦)을 시작한 지 25년, 금강경을 약 2만 번째 읽었을 때였다.

박은주는 불교와 인연이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가 불교신자였고, 데미안을 쓴 헤르만 헤세도 불교에 심취한 적이 있었다. 그를 김영사로 데려온 김정섭 전 사장도 재가(在家) 수행자였다. 그리고 대학 시절 그의 롤모델은 진리를 깨우친 자, 부처였다. 니체, 쇼펜하우어, 스피노자도 채워주지 못한 목마름을 지닌 그에게 부처는 샘물 같았다.

“부처에 대한 책을 읽을수록 정말 탁월하다고 느꼈어요. 제 작은 앎 가지고는 도달할 수 없는 진리의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이분 마음의 경지까지 가고 싶다는 열망이 생긴 거예요.”

조계종 조계사에서 좋은 법문을 한다고 하면 가서 듣고, 다니던 대학에 승려들이 불법을 전하러 오면 빠지지 않았다. 서울이든 수도권이든 충청도든 좋은 스님이 계신다고 하면 찾아 문답을 나눴다. 수업이 없을 때나 방학 때면 그는 길을 찾는 순례자의 심정으로 산에 올라 절을 다녔다. 주로 홀로였고, 먼 길일 때는 남동생들이 보디가드처럼 같이 갔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답은 찾지 못했다. 유마경, 반야심경 같은 불교 경전도 읽어봤지만 “도대체 알려고 해야 알 수도 없고, 파악하려 해도 파악할 수 없고, 끝도 없고 한계도 없는” 글들이었다. ‘어떻게’ ‘어떻게’가 쌓여만 갔다.

그러던 1983년 김정섭 전 사장이 그를 스카우트했고, 그의 속은 시원해졌다. 편집부장으로 업무보고를 한 뒤에는 늘 문답이 이어졌다. “전생은 있나요?” “윤회는 있나요?” “타고난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 건가요?” “우주에는 끝이 있나요?”…. 밑도 끝도 없는 질문에 김 전 사장은 막힘없이 답을 해줬다. 그리고 금강경을 독송하라고 권했다. 1984년이었다.

금강경 독송은 매일 일어나고 잠잘 때 한다.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엉덩이만 들어 바로 서고 두 손으로 책을 들고 읽어나간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 27∼28분이 걸린다. 밤을 꼬박 새우며 읽을 때도 있다. 물론 해외에 나갈 때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읽은 시간을 모두 합하니 1만 시간이 좀 넘었다.

○ 길은 여기

그래서 깨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답은 의외였다. “깨칠 게 없다는 것을 깨쳤어요.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사는 것. 그것이 인간이 가야 할 완전한 길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러나 이 말을 하는 박은주의 표정에는 전혀 허탈함이 없었다. 그동안 들인 1만 시간은 섭섭하지 않을까. “좀 그렇죠. 왜 나한테는 깨달음의 순간이 오지 않을까, 그동안 고민하고 고뇌하고 답답해했어요. 깨달으면 어떤 엄청난 세상이 열리는 줄 알았지요. 이제는 내가 그저 깨달음, 깨달음 하며 그것을 맹목적으로 찾아왔을 뿐이라는 걸 알았죠.”

그의 금강경 독송은 지금도 계속된다. 금강경은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얼굴을 세수하듯 마음도 매일 닦아야 한다. 경(經)이 곧 경(鏡·거울)인 셈이다.

그는 “불교라는 길을 가지 않았어도 출판이라는 이 길로 왔을 것”이라고 했다. 출판인은 좋은 책을 통해 세상을 이롭게, 행복하게 하면 되는 것이다. 박은주는 그게 복을 짓는 일이라고 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