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제공
거연정은 이 중에서도 가장 상류에 자리하고 있다. 이 정자는 1640년경 화림재 전시서(全時敍)가 서산서원을 짓고 지금의 자리에 억새를 이어 정자를 만든 것이 처음이다. ‘거연’이란 이름은 주자의 시 ‘정사잡영(精舍雜詠)’ 중 “그렇게 나와 샘과 돌이 같이 사네(居然我泉石)”에서 따온 것이다. 주자가 살았던 무이구곡이 그랬는지 모르지만 화림재의 거연정은 그래서 계곡의 천변에 있는 게 아니라 아예 계곡의 섬 안에 들어가 앉아 있다. 주자의 시 구절 그대로 물과 바위와 정자가 한 몸이 되어 흐르고 있다. 영남의 정자들이 풍경 속에 숨어 있는 것이 특징이긴 하지만 이렇게 풍경 속으로 뛰어든 적극적인 예는 아마 거연정이 유일할 것이다.
억새를 이어 지붕을 올린 이 정자는 전시서 이후 돌보는 이가 별로 없어서였는지 퇴락했음이 틀림없다. 1853년 서산서원에 화재가 나고 그 이듬해 다시 복구했지만 1868년 대원군이 서원 철폐령을 내리자 서산서원은 완전히 없어져버렸다. 선조의 유적이 사라져버리자 그를 추모할 길이 없어진 후손들은 1872년 억새로 된 정자를 철거하고 철폐된 서산서원의 재목으로 거연정을 재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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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 상부는 기둥에 비해 대들보와 도리의 부재치수가 커 서원의 부재들이 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자연을 타고 넘어 자연 속으로 뛰어들어 자연이 된, 그래서 바깥에서 정자를 보는 모습이 더 아름다운 정자다.
함성호 시인·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