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D-2… 모스크바 르포
정위용 기자
러시아 대통령 선거를 사흘 앞둔 1일 오후 모스크바 크렘린 궁전 서북쪽으로 1km 떨어진 푸시킨 광장.
경찰의 삼엄한 경비를 의식한 듯 지나가는 시민들은 애써 목소리를 낮췄다. 제정러시아 국민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이 노년에 세 들어 살던 집과 그의 이름을 딴 고급 카페가 문을 연 이곳은 평소 지방에서 올라온 관광객과 외국인들로 북적거리던 곳이었다. 하지만 이날 광장은 경찰차로 둘러싸였다. 보행자 통로에 늘어선 경찰들은 지나가는 시민들의 거동을 유심히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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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여론조사 기관들은 큰 이변이 없는 한 푸틴 총리가 4일 대선에서 과반수를 득표함으로써 결선투표 없이 당선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베도모스티 등 러시아 일간신문들은 “푸틴 총리가 70%에 가까운 득표율로 당선이 유력하다”고 1일 보도했다.
특히 연령이 높아질수록 “뽑을 후보가 없어 푸틴을 찍겠다”고 말하는 대안 부재론이 세를 얻는 모습이다. 모스크바 서쪽 벨로루스키 기차역 부근에서 만난 택시운전사 데니스 마카렌코 씨(51)는 “레닌 시대의 유물이 된 공산당 당수(겐나디 주가노프), 막말을 해대는 극단적 민족주의자(블라디미르 지리놉스키)는 푸틴의 경쟁 상대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 국민의 관심은 벌써부터 선거 이후의 정국으로 모아지는 모습이다. 현지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 과정에서 분출된 시민들의 민주화 열망으로 인해 푸틴 총리가 승리하더라도 과거의 차르(러시아 황제)식 대통령으로 군림하지는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러시아 방송인 크세니야 소브차크 씨는 “야당의 요구를 계속 무시하면 푸틴 정권이 6년 동안 유지되기도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스크바에서 만난 시민 이고리 플류첸코 씨(28)는 “푸틴이 권위주의적 통치 스타일을 바꾸지 않으면 반정부 운동이 힘을 더 얻어 혁명이나 쿠데타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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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만난 정보기술(IT) 회사 직원인 알렉세이 페미도프 씨(28)는 “선거는 ‘그들만의 행사’”라며 “우리를 좀 더 잘살게 만들 수 있는 지도자가 나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의 친구들은 “러시아는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 나라”라고 강조하면서 “푸틴이 반대파를 계속 무시하면 엄청난 결과를 맞을 수 있다”고 거들었다.
네자비시마야가제타 등 러시아의 유력 일간지들은 “푸틴이 재집권하더라도 2000년대 초반처럼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치평론가 보리스 나데즈딘 씨는 “이제는 푸틴 총리를 지지한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꺼내기도 곤란한 상황”이라며 “지난해 12월 4일 총선에서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된 이후 대규모 도심 시위가 대선으로 이어진 탓”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선거관리위원회가 서명이 잘못되거나 주소지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재야 간판 후보들의 등록을 거부한 데 대한 야권의 반발도 거세다.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으려는 재야 단체들은 대선 다음 날인 5일 크렘린 북쪽 루비안스카야 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며 집회 허가를 신청했다. 이들은 모스크바 시청이 집회를 불허하자 트위터 등으로 “민주주의를 살려내기 위해 광장을 점령하라”고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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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