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A 첫승 감격 ‘필드의 저니맨’ 존 허의 思父曲
《 청바지에 큼직한 골프백을 둘러멘 모습이 어색하지 않았다. 1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의 리비에라CC에서 만난 재미교포 프로골퍼 존 허(허찬수·22)였다. 당시 그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 보였다.
밝은 얼굴로 희망을 얘기하다 떠났던 존 허가 불과 11일 만에 평생 잊지 못할 첫 우승의 주인공으로 나타났다. 27일 멕시코에서 끝난 PGA투어 마야코바 클래식에서 우승한 그는 자신이 이룬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 듯 무표정했다. 중계 카메라에 소감을 밝히면서 비로소 울먹거렸다. “이 기쁨을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본보 17일자 A26면 ‘필드의 저니맨’ 거침없이 굿샷∼ 》
2010년 신한동해오픈에 출전했던 존 허(왼쪽)와 캐디로 나선 아버지 허옥식 씨. 한국프로골프투어(KGT) 제공
존 허는 1990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생후 3개월 만에 부모님, 네 살 위 형과 서울로 돌아왔다. 아버지 허 씨는 동대문시장에서 원단과 의류 사업을 했다. 단란한 가정에서 존 허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골프를 시작했지만 이런 여유는 오래가지 않았다. 외환위기에 휘말려 사업 실패에 보증까지 잘못 선 아버지는 가족들을 데리고 아무 연고도 없는 시카고로 떠났다. 허 씨는 골프에 막 재미를 붙인 아들을 위해 춥고 바람이 많이 부는 시카고를 떠나 로스앤젤레스로 옮겼다. 국내 사업을 위해 영주권을 반납했던 그는 불법체류라는 불안한 신분에도 식당과 슈퍼마켓 등에서 온갖 허드렛일에 막노동까지 하며 뒷바라지를 했다. 존 허도 연습장에서 공을 줍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운동에 매달렸다.
허 씨는 “찬수가 놀이동산에서 인형 맞히기 사격을 하면 백발백중이었다. 힘도 장사라 또래 친구 몇 명이 밀어야 움직일 정도였다”고 떠올렸다. 타고난 운동감각에 골프 유망주로 주목받은 존 허는 2008년 노스리지 캘리포니아주립대에 입학했지만 두 달 만에 자퇴한 뒤 프로의 길을 선택했다.
이듬해 존 허는 한국프로골프투어 외국인 프로테스트에 응시해 합격한 뒤 지난해까지 3년 동안 국내에서 뛰며 2010년 신한동해오픈에서 자신의 롤 모델이었던 ‘탱크’ 최경주를 꺾고 역전우승을 차지하며 비로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코리안 드림’도 쉽지 않았다. 변변한 수입이 없어 서울 강북에서 경기 성남시 분당의 연습장까지 캐디백을 든 채 전철과 버스를 타고 다녔다. “쳐다보는 사람이 많았지만 나도 출근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버텼어요.” 경기 광주시의 33m²(약 10평) 규모의 월세 40만 원짜리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살았다. 허 씨는 “티셔츠가 별로 없어 자주 빨래를 했다. 주말골퍼 사이에 끼여 연습라운드를 했다”고 털어놓았다.
경비를 아끼려고 캐디로도 나선 아버지에게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2009년 삼성베네스트오픈 때 캐디를 하다 너무 힘들어 카트를 탔다 2벌타를 받았다. 대회 도중 스프링클러를 잘못 밟아 오른쪽 발목을 다친 적도 있다.
지난해 존 허는 PGA투어 퀄리파잉스쿨에 응시해 최종 라운드 마지막 홀 보기로 27위가 돼 25위까지 주어지는 합격증을 날린 줄 알았다. 하지만 3시간을 기다리다 앞선 두 명이 다른 자격으로 빠지게 돼 막차로 합격한 뒤 아버지와 포옹하며 기쁨을 나눴다. 존 허는 “OB 말뚝이 많고 산악 지형 코스가 많은 한국에서 티샷 정확도를 높인 덕분에 PGA투어에서도 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존 허의 올 시즌 PGA투어 드라이버샷 정확도는 69%로 9위이며 평균 타수는 2위(69.32타)다.
2010년 신한동해오픈에 출전했던 존 허(왼쪽)와 캐디로 나선 아버지 허옥식 씨. 한국프로골프투어(KGT) 제공
골프 스타를 꿈꾸며 태평양을 넘나든 아버지와 아들. 그들의 밝은 미래는 이제부터 시작인지 모른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