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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한상복의 남자이야기]“미안한 것은 사랑하기 때문”

입력 | 2012-02-25 03:00:00


오래전부터 알고 싶었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궁금증 하나.

아버지는 도대체 무슨 죄를 그리도 많이 지었기에, 귀에서 고름이 나올 때까지, 어머니의 공세에 시달렸던 것일까.

세월이 흘러 당시 아버지의 나이가 된 지금에야, 그 ‘죄’가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는 지금도 죄인이며, 이제 아들까지 대를 이어 죄를 짓고 있다. 이런 사정은 다른 집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원죄.

남자의 원죄는 결혼과 동시에 베일을 벗는다. 사랑하는 여성이 원하지 않았던 것들을 대거 떠안기는 반면, 그녀가 정작 원하던 것들은 주지 못하는 원죄.

KBS 부부클리닉-사랑과전쟁. 사진은 해당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원치 않았던 것들이란, 어떤 의미와 가치도 찾을 수 없는 노동, 자신의 값어치가 제로로 떨어졌다는 자괴감, 그리고 ‘시(媤)’자가 붙은 모든 일방적 관계들이다. 무엇보다 피하고 싶었던 것은, 생소함 속에 홀로 남겨진 고립감이었을 게다.

반면 여자가 원했던 것은, ‘사랑받고 있다’는 존재감이다. 안정된 생활 속의 소소한 배려와 소통을 통해 그것을 늘 확인받고 싶어 하는 게 여자들의 마음이니까.

하지만 남자들에겐 이 부분도 난감하다. 일과 사랑을 동시에 잘하는 건 TV 드라마의 주인공에게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드라마 각본은 대개 여자들의 작품이다. 남자의 뇌는 여자들만큼 여러 가지 민감한 것을 동시에 다루지 못한다. 한쪽에 몰입하면 다른 한쪽을 놓아둘 수밖에 없다.

요즘 젊은 세대는 영민함의 차원이 다른 것 같다. 장차 큰 죄를 지어야 할 것을 예감하기 때문일까. 어떤 남성들은 신주단지처럼 아끼던 디지털카메라며 노트북컴퓨터를 팔아 여자 친구에게 명품 가방 같은 것을 선물하기도 한다. 속죄 양 대신 ‘속죄 가방’인 셈이다.

그러나 원죄는 최고급 속죄 가방으로도 깨끗하게 씻어낼 수 없다. 물론 대부분의 남자는 그런 가방 하나 선물하지 못하는 대역 죄인이다.

남자들은, 죄를 추궁당하는 시간이 돌아오면, 언제나 “미안하다”밖에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정말로 사랑하니까 미안한 것이다. 추궁을 당하다 보면 자신으로선 어쩔 수 없는 것이 너무 많다. ‘시’자 붙은 관계로부터 사소한 속죄 가방 하나 사주지 못하는 것까지, 능력의 한계를 절감한다.

결국, ‘미안하다’는 사랑을 표현하는 남자의 가장 솔직한 말이다. 사랑은, 여자에겐 감정의 문제이겠지만, 남자에겐 능력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남편 혹은 남자친구에게 “뭐가 미안한지, 조목조목 말해보라”는 가혹한 요구만은 하지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냥 다 미안할 따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