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진 정치부 차장
낙천·낙선운동이 ‘유권자 혁명’으로 불릴 만큼 지지를 받은 것은 총선시민연대가 도덕성을 최우선 기준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 우선적으로 1순위 대상자가 됐다. 확정 판결이 나지 않았더라도 법률적 다툼의 여지가 없이 사실관계가 확인된 경우도 명단에 올랐다. 정치자금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영수증을 주고받았더라도 청탁 정황이 확인되거나 본인이 이를 인정하는 경우 역시 대상자가 됐다.
낙천·낙선운동은 당시 박원순 참여연대 사무처장(현 서울시장)의 아이디어에 따른 것으로 김기식 참여연대 정책실장이 주도했다. 김 씨는 현재 ‘혁신과통합’ 공동대표 겸 민주통합당 전략기획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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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민주당 지도부는 거의 반사적으로 ‘수용 불가’ 방침을 밝혔다. “여러 상황을 고려하기 시작하면 공천심사위원회가 방향타를 잃고 헤매게 된다”는 게 이유다. 이미 공천심사가 시작된 만큼 ‘대법원 확정 판결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부패·비리 전력자라 하더라도 공천심사위원 절반 이상이 찬성하면 면죄부를 주겠다’고 한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얘기다.
속으론 더 복잡한 사정이 있다. 혁신과통합의 요구대로라면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임종석 사무총장부터 공천에서 배제해야 한다. 2010년 6월 지방선거 때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이광재 씨를 강원지사 후보로 내세운 일도 설명하기 곤란해진다. 야당 정치인을 겨눈 검찰 수사에 대해 ‘표적 수사’니 ‘정치 탄압’이니 하며 반발하면서 수사나 재판을 받고 있는 정치인을 일방적으로 두둔해온 것도 설득력을 잃는다.
자칫하면 자기부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니 민주당이 딜레마를 느낄 법도 하다. 하지만 민주당은 진보 정당을 표방하고 있고, 진보정치의 가장 큰 무기는 도덕성이다. 그런 민주당에서 “우리 당에서 뜨려면 부패·비리 혐의로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자조가 나오는 건 참 딱한 일이다.
이런 상태로 이명박 정권의 부도덕성을 탓한들 유권자들의 눈엔 오십보백보다. 민주당이 4월 총선에서 제1당이 되고자 한다면 먼저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공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그런 뼈를 깎는 노력 없이 야당 승리가 대세라고 믿는다면 백일몽일 뿐이다. 진보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지 퇴행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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