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건설근로자 1만5000명 시대… 기러기 아내 3인, 눈물 콧물 수다
해외건설 현장에 남편을 보낸 가족들에게 휴대전화 속 사진은 그리움을 달래고 사랑을 확인해주는 증표다. 남편의 해외 부임 6개월차인 강소영, 7년차인 전지원, 14년차인 김정임 씨(왼쪽부터)가 휴대전화 속 가족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남편 양동신 대우건설 대리를 오만의 화력발전소 현장으로 보낸 지 반년이 되어가는 강소영 씨(29). 그는 28개월 된 아들과 배 속에서 자라고 있는 둘째까지 합심해 4개월에 한 번인 남편의 귀국 휴가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드라마에서 식구가 둘러앉아 저녁식사 하는 장면을 보던 아들이 문득 “엄마, 아빠 또 와?”라고 걱정스레 묻던 날, 말문이 막혀 시어머니가 옆에 있는데도 한참을 펑펑 울었다. 하지만 강 씨의 이 정도 서러움은 해외 현장에 남편을 보낸 지 10년이 넘은 김정임 씨(43·GS건설 이정호 부장 아내), 올해로 7년차인 전지원 씨(36·대림산업 최돈성 차장 아내)에 비하면 애교에 가깝다. ‘해외건설맨’의 아내들은 이달 초 서울 광화문 인근 한 커피숍에서 눈물 콧물, 가슴 찡한 수다를 떨면서 동병상련의 정을 나눴다.
○ ‘해외건설 후방을 책임지는 아줌마들’
회사도, 직급도 다르지만 남편이 해외 오지 발령 사실을 알렸을 때 세 사람이 받은 충격은 모두 같았다. 김 씨는 “이혼 도장 찍고 가라”고 으름장을 놨고, 강 씨는 “모래바람 날리는 허허벌판이 떠올라 눈물부터 났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숙소가 좋아도 가족과 떨어진 외로움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상당수 건설사들은 해외 부임 직원들에게 4개월마다 2주가량의 휴가와 항공비를 지원한다. 강 씨는 “D―데이에 맞춰 탁상달력에 ×표를 하기 때문에 직장 동료들도 귀국이 며칠 남았는지 알 정도”라고 말했다. 이들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귀국 날 아이들과 ‘아빠, 사랑해요!’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공항으로 마중 갈 때다.
그러나 설렘은 오래가지 않는다.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이젠 출국 날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아무리 오래 떨어져 있어도 이별은 적응이 되지 않는다. 전 씨는 “아직도 남편을 배웅한 뒤엔 한참을 차에 혼자 앉아 운다”며 “하지만 눈물을 닦고 승용차의 시동을 건 뒤엔 언제 그랬냐는 듯 힘차게 이곳에서의 삶을 지키는 ‘후방부대’ 역할을 하러 간다”고 말했다.
○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남편 자랑스러워
가장을 멀리 보낸 가족들은 걱정으로 일상을 보낸다. 지난해처럼 북아프리카 중동발 시위나 내전이 끊이지 않을 때는 외신 등 관련 기사를 찾아보느라 정신이 없다. ‘아빠는 우주에 있다’고 믿는 막내를 볼 때마다, 남편과 툭 터놓고 맥주 한잔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싶을 때마다 속상하기 짝이 없다.
남편은 남편대로 고생이다. 전 씨는 “중동 이슬람 국가에선 술 반입이 금지되는 등 유흥문화가 없어 남편 담배만 느는 것 같아 속상하다”고, 김 씨는 “동창회는커녕 지인들 경조사를 못 챙겨 속상해하는 것도 안돼 보인다”고 털어놓는다.
김 씨 역시 “어릴 때는 주말이면 아빠와 놀러가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던 아이들도 이젠 회사가 역량을 집중하는 분야에서 사명감을 갖고 전문성을 키운 아빠를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한다”고 했다. 다시 결혼해도 ‘해외 부임 건설맨’을 선택할 용의가 얼마든지 있다는 이들은 눈치를 살피더니 마지막으로 딱 한 가지만 건의하고 싶다고 했다. “왕복 비행시간 빼면 채 2주가 안 되는 휴가 기간을 이틀 정도 늘려줄 순 없을까요?”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