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 국무부 “청두 영사관 방문은 사실”
9일 중국 인터넷에는 왕 부시장이 7일 오후 업무상 출장을 가야 한다고 둘러대고는 1급 기밀문서를 들고 자동차로 4시간 거리인 쓰촨(四川) 성 청두(成都)의 미국영사관에 망명을 신청했다는 소문이 급속히 돌았다.
왕 부시장은 영사관에 4시간가량 머물렀는데 중국 경찰이 이를 알고 건물 주변을 봉쇄했다고 한다. 영사관은 어쩔 수 없이 왕 부시장을 중국 측에 넘겨준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 롄허(聯合)보는 목격자 증언을 빌려 왕 부시장이 영사관을 나와 요원들에게 끌려가면서 “나는 보시라이의 희생양이다. 혼자 죽을 순 없다”고 고함을 질렀다고 전했다. 또 그는 “자료를 외부에 넘기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고도 말했다. 일각에서는 왕 부시장이 이미 관련 자료를 해외로 넘겼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이와 관련해 9일 홍콩 언론들은 왕 부시장이 전날 당 감찰기구인 기율검사위원회에 의해 베이징(北京)으로 송환돼 조사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기율검사위는 주로 고위 간부들의 부패 혐의를 조사한다.
몽골족인 왕 부시장은 말단 교통순경으로 입문해 보 서기의 눈에 들어 고속승진을 거듭했다. 이달 초까지 시 공안국장을 겸하며 범죄와의 전쟁을 이끌었다. 2007년 이후 6000여 명의 폭력배를 잡아들여 ‘치안 영웅’으로 불렸다. 하지만 2일 갑자기 환경과 교육 담당으로 보직이 바뀌었고, 8일에는 한 달간 병가를 냈다는 말도 나왔다.
○ “파벌 간 권력투쟁 재점화”
현지 언론은 이번 일이 6년 전 천량위(陳良宇) 상하이 당 서기의 실각과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천 서기는 상하이방(장쩌민 전 주석 계열의 고위 간부 집단)의 핵심 인사였지만 2006년 기율검사위에 의해 비리 혐의로 체포된 뒤 18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이끄는 공산주의청년단파(團派·퇀파이)가 상하이방을 쳐 내기 위한 계략이었다는 말이 나왔다.
이번 사건도 좁게는 보 서기를 밀어내기 위해, 넓게는 당내 정치노선의 대립이라는 시각이 나온다. 표면상으로는 보 서기와 왕 부시장 간의 거래 관계가 틀어진 데 따른 폭로전으로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거대한 권력다툼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보 서기가 자신의 허물을 왕 부시장에게 덮어씌우자 왕 부시장이 이에 반발해 망명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퇀파이 대 태자당·상하이방 연합세력 간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공산당 하부조직인 공청단 출신으로 구성된 퇀파이가 평범한 집안 출신으로 분배와 조화를 강조한다면 태자당과 상하이방은 성장과 효율을 중시한다.
단적으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4조 위안의 경기부양 자금 용처를 둘러싸고도 퇀파이는 쓰촨 대지진 피해지역 복구 및 내수시장 육성에, 태자당·상하이방은 수출기업에 우선 지원하자고 주장했다.
이는 곧 ‘자리’를 둘러싼 권력 다툼으로 비화돼 차기 정치국 상무위원 자리를 놓고 두 세력이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다.
▼ 反중국 사이트 왕리쥔 서신공개 ▼
미국에 서버를 둔 반(反)중국 웹사이트 보쉰닷컴은 9일 왕리쥔 부시장이 쓰촨(四川) 성 청두(成都)의 미국영사관에서 중국 당국에 신병이 인도될 때 ‘전 세계에 보내는 공개 서신’을 갖고 있었다며 관련 내용을 공개했다.
왕 부시장은 편지 말미에 “나는 인민을 위해 일하지 나쁜 놈 밑에서 울면서 탄식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시라이 같은) 이런 간신이 권력을 잡으면 중국의 재난이며 민족의 불행”이라며 “나는 생명이 붙어 있는 한 보시라이의 잘못을 폭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가 조만간 보 서기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에 착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