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나라 이웃나라’ 이원복 교수, 스키타이 황금문명전 가보니…
‘먼나라 이웃나라’의 저자인 이원복 덕성여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가운데)가 4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금천구 탑동초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스키타이 황금문명전’을 관람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인류가 물가에서 농경생활을 시작한 이후 땅에 삶을 걸었기 때문에 이동이 줄어든 반면 유목민들은 목초지를 찾아 끝없는 유랑생활을 해야 했다. 그래서 유목민들이 개발한 위대한 이동수단이 말과 수레다. 즉 말의 사육과 바퀴(車)의 발명이 광활한 대초원을 그들의 삶의 근거지로 만들게 한 것이다.
유목민족은 인간의 이동속도뿐 아니라 인간이 창조한 문명을 농경인보다 몇 배나 빠른 속도로 넓고 멀리 전파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고대 유목민족 가운데 스키타이족이 있었다.
유라시아 대륙은 끝없이 광활하지만 아시아와 유럽을 가르는 우랄산맥이 800∼1200m의 낮은 산악들이기 때문에 유목민들은 유럽과 아시아를 마치 오늘의 고속도로 질주하듯 한달음에 마음대로 누비며 넘나들 수 있었다. 그 결과 그들은 농경민족보다 훨씬 더 빠르고 넓은 지역에 서로 다른 문명을 전파하였고 스스로도 문명의 융합을 일으켜 세계 고대문명의 화학작용에 크게 기여하였다.
한 예로 기원전 3세기경의 스키타이 황금장식품에는 그리스 미술과 페르시아 미술의 영향이 절묘하게 융합되어 나타나는데 이는 스키타이를 비롯한 유목민족의 빠른 문명 전파력과 융합력의 결과이다. 마찬가지로 8세기에 만들어진 신라 석굴암의 부처님 얼굴이 그리스 조각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고대에 이미 네트워크로 세계가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며, 우리에겐 생소한 우크라이나와 스키타이 문명에도 우리 고대문화의 한 뿌리가 닿아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이원복 교수가 ‘스키타이 황금문명전’ 관람객과 동아일보 독자를 위해 ‘먼나라 이웃나라’ 삽화풍으로 스키타이족 전사를 그려왔다. 이원복 교수 제공
또 한 가지, 이 전시회를 통해 우리가 너무나 귀중한 역사의 기본 한 가지를 무시한 채 지내오지 않았는가를 자성(自省)하게 한다는 점이다. 무릇 우리의 뿌리를 이루는 고대문명, 역사 이전의 유라시아 문명, 특히 유목민족 문화권은 모두 과거 공산권에 속해 있었기에 우리에게는 금단의 땅이었고 그 문명은 수십 년간 망각의 늪에 가라앉아 있었다. 그 결과 우리는 역사의 뿌리는 외면한 채 최근 200여 년 세계를 장악했던 서유럽 중심의 역사관과 역사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어 대단히 기형적이고 편향된 역사지식과 의식을 지니게 됐다.
이원복 덕성여대 교수·‘먼나라 이웃나라’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