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세 무상보육 2조 배정… 정작 아이 맡길곳은 태부족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사는 주부 황수미 씨(33)는 3일 인근 한 어린이집에 14개월 된 아이를 등록하려다 깜짝 놀랐다. 정원 65명인 어린이집에 자리가 나길 기다리는 아동이 무려 2415명에 달했기 때문이다. 마포구의 다른 어린이집 역시 국공립은 최소 수백 명, 사립은 수십 명씩 대기아동이 있었다. 황 씨는 “정부에서 무상보육을 실시한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읽고 좋아했는데, 정작 보육을 맡길 어린이집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며 한숨을 쉬었다.
정부와 국회가 올해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0∼2세 무상보육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정작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아이를 맡길 시설이 턱없이 부족한데도 보육료 예산만 늘려 대기 인원만 늘어나게 됐다”면서 현실을 도외시한 졸속정책이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외벌이 엄마는 “맞벌이 엄마가 애 맡기면 공짜고, 직업 없이 집에서 애 키우면 혜택이 한 푼도 없다”고 반발하고, 당장 무상보육 사각지대가 된 3, 4세 부모들은 “3, 4세는 집에서 레고나 맞추라는 것이냐”며 인터넷에 항의 글을 쏟아내고 있다.
▼ “사실상 맞벌이만 보육 혜택” 논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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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이 2030세대의 표를 노리고 무상보육 예산에 총 2조3913억 원을 배정했지만 기획재정부는 어린이집 시설 증개축에 고작 119억 원만을 편성했다. 그나마 리모델링 비용을 제외하면 신축에 들어가는 비용은 19억8000만 원에 그친다. 중앙정부 지원으로 새로 만들어지는 국공립 어린이집 정원은 700개, 현 정원의 0.04% 수준이다. 성문주 남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무상보육도 좋지만 대도시의 국공립 시설을 대폭 늘리는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게시판에는 전 계층 무상보육 혜택에서 빠진 3, 4세 부모들의 항의 글이 빼곡히 올라와 있다. 황금돼지해인 2007년생과 2008년생이 대상으로, 가뜩이나 태어난 아이가 많아 경쟁이 치열한데 보육비마저 못 받게 돼 불만이 터진 것이다. 항의 글을 올린 이미숙 씨는 “엄마 손길이 많이 가야 하는 0∼2세 보육은 지원하면서, 정작 보육이 필요하고 뭔가를 배워야 하는 3, 4세를 지원하지 않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복지부 보육통계에 따르면 어린이집 및 유치원에 다니는 아동 비중은 0세가 27.9%, 1세가 51.7%인 반면 4세는 80.8%, 3세는 71.9%에 이른다. 갓난아기는 출산휴가나 휴직을 해서라도 키우지만 3세가 넘어가면 외벌이 가정조차도 교육을 위해 아이를 시설에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보육비 지원에 맞춰 양육수당이 늘어나지 않은 점도 문제다. 0∼2세의 경우 시설에 다니면 무조건 보육비를 지원받지만 부모가 집에서 키우면 차상위계층과 장애아동에 한해 월 10만∼20만 원의 양육수당이 지급된다. 보육시설에 맡기는 집은 맞벌이인 경우가 많고,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집은 외벌이가 대부분인 만큼 올해의 무상보육 혜택은 맞벌이 가정에 집중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인터넷 육아 커뮤니티에서는 맞벌이와 외벌이 간에 신경전마저 벌어지는 양상이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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