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 무관심 무책임… 위기의 열도3無 뚫고 日 재건할 새 리더십 열망
○ 제3의 패전…높아가는 위기의식
일본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인 2ch(2채널)에는 일본의 미래를 걱정하는 토론방 개설이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 ‘경기 최악’ ‘취직 최악’ ‘학력 저하’ ‘정치 최악’ ‘부채 1000조 엔 곧 돌파’ ‘대학은 삼류…’ ‘좋은 게 하나도 없다’는 어두운 내용이다. ‘비관론 중독증’이라는 비판까지 나올 정도다.
글로벌 무대에서 일본의 위상은 쇠락하고 있다. 특히 일본 문화의 확산을 의미하던 ‘재퍼나이제이션(Japanization·일본화)’은 ‘정치 무능이 초래한 장기침체’로 의미가 바뀌어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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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한 리더십은 국민의 심리적 좌절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된 1990년에 태어난 와세다대 3학년 모리카와 유키(森川雄基) 씨는 “취업난도 심각하지만 취업해도 숨이 막히는 사회구조”라며 “일본 정치에 대한 기대를 접은 지 오래지만 우리 힘으로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이 더욱 힘들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런 좌절감은 극단적인 무관심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미쿠리야 다카시(御廚貴) 도쿄대 교수는 “지난해 수업 중 학생들에게 ‘(중국과의 충돌로)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가 위험하다’고 말을 건넸는데 대부분 학생들이 남의 일처럼 ‘빼앗겨도 별 상관없잖아요’라고 응답해 깜짝 놀랐다”고 소개했다.(주오고론·中央公論 작년 9월호)
○ 속수무책 리더십에 국민 인내 한계
가장 큰 위기는 일본 리더십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최근 5년간 총리 6명이 교체되는 등 단명 정권은 만성화되다시피 했다. 일본 국민은 3·11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사고 수습 과정에서 보여준 정부의 무능과 혼란을 그 대표적 사례로 기억하고 있다. 총리들의 리더십은 심지어 중고생들 사이에서도 희화화됐다. 간 나오토(菅直人) 전 총리를 빗댄 간루(菅る)는 “아무것도 안 하고 노닥거린다”는 뜻으로 굳어지고 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총리를 빗댄 ‘하토루’는 “무책임한 말을 하고, 말할 때마다 내용이 바뀌고, 나쁘다는 생각도 없이 거짓말을 한다”는 의미다. 미국 헤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최근 로스앤젤레스타임스 기고문에서 “리더를 배출할 수 없는 정치 시스템 때문에 (일본 국민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정치 시스템은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다. 총리를 집권당 계파 간 거래와 협상에 따라 선출하다 보니 미국과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나 소비세 인상 등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굵직굵직한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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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민들의 인내심도 한계에 도달했다. 아사히신문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의 70%는 총리를 직선제로 뽑아야 한다고 응답했다. 후지와라 마사히코(藤原正彦)오차노미즈여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일본 서점가를 강타한 ‘일본인의 자존심’에서 현재의 일본 사회를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어지럽혀진 방”에 비유하며 “복합중층 문제에 봉착한 일본을 바꾸기 위해서는 일본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축을 일거에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 2012년은 일본 리더십 재건 분기점
야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은 새해 벽두부터 노다 총리에게 “소비세 인상안 국회 제출에 앞서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하라”고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다.
노다 총리도 결전 의지를 굳히고 있다. 산케이신문은 소비세 인상안이 올봄 정기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노다 총리가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하겠다는 뜻을 자신의 자문역인 전직 총리에게 밝혔다고 3일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소비세 인상에 반대하는 여당 의원들이 집단 탈당하면서 새해 총선 및 정계개편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노다 요시히코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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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
일각에서는 강력한 리더십 재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나고야(名古屋) 지방지인 주니치신문은 최근 사설에서 “정치불신이 강력한 지도자 대망론으로 연결돼 독재를 환영하는 분위기가 생긴다”며 “나치의 독재나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군부의 독재를 허용한 것도 바로 국민이었다”고 경고했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