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가 몰고온 ‘불통 정치’, 죽은 김정일이 흔들다
“한 말씀 하시죠” 이명박 대통령(가운데)이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교섭단체 대표, 원내대표 회담에 앞서 한나라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에게 발언을 권하고 있다. 왼쪽은 민주통합당 원혜영 공동대표. 청와대사진기자단
레임덕(임기말 권력누수현상)이 나타나면서 서서히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일 뻔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새로운 활력을 얻어 국정을 주도할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이런 외형적 환경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야 간 합의처리 문화가 정착할지, 민생우선의 일처리 등 국민이 원하는 소통정치가 제 기능을 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 청와대에 모인 여야 지도부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한나라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황우여 원내대표, 민주통합당 원혜영 공동대표, 김진표 원내대표와 청와대에서 마주 앉았다. 청와대 참모들은 회담이 하루 만에 성사됐다는 점에서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반응했다. 이 대통령이 2개월 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의제로 야당 지도부를 초청했을 때 민주당은 “일방적인 한미 FTA 비준안 찬성 요구라면 의미가 없다”며 거부했다. 그만큼 김정일 사망 정국을 우려 속에 바라보는 국민의 눈길이 여야의 초당적 협력을 이끌어낸 기폭제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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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직접 통화를 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선 “후 주석은 우리뿐 아니라 이번 사태와 관련해 어떤 나라와도 직접 통화를 하지 않았다”며 거듭 소통에 문제가 없음을 항변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2006년 6자회담 당시 중국인들은 ‘북-중 정상 간에도 전화 통화는 않는다’고 할 정도로 전화 정상외교에 중국이 익숙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참석자들이 김 위원장 사망을 인지하지 못한 점을 지적하자 “북한 발표를 보고 알았던 게 사실이지만 세계 어느 나라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몰랐다”며 “우리가 갖고 있는 정보사항이 있다. 하지만 억울하더라도 이를 얘기하지 않는 게 좋겠다”며 말을 아꼈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이 요청한 △한미 FTA 비준안 재협상 촉구 결의안 채택 △외교·안보라인의 전면 개편 및 교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뜻을 밝혔다.
원혜영 대표는 “어려운 상황에서 초당적으로 하겠다. (조문 등에 대해) 정부가 적절히 대응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어 원 대표는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등 단체를 거론하면서 “북한 돕기에 나선 민간단체를 적극 활용해 북한과 신뢰회복 의지를 보였으면 한다”고 요청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민간 차원 방북조문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했다.
○ 6개월 만의 이명박-박근혜 독대
이 대통령과 박 위원장은 따로 배석자 없이 20여 분간 대화를 나눴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두 사람의 독대는 6월 3일 이후 6개월여 만이다. 청와대 참모들은 국회 차원의 평양 조문(弔問)에 박 위원장이 동의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이 대통령이 “정부의 뜻에 따라줘 감사하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박 위원장은 청와대를 떠난 뒤 기자들과 만나 “(독대 자리에서) 현 시국과 예산국회 진행과 관련해 말씀을 많이 들었다”고 짤막하게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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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박 위원장이 이날 출판기념회를 연 친이(친이명박)계 핵심 이재오 전 특임장관에게 축전을 보낸 것도 화제였다. 박 위원장은 “지금은 모두가 힘든 시기”라며 “이 의원님이 미래 희망 책임의 정치를 통해 우리 정치와 국가발전을 위해 큰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고 덕담을 했다. 박 위원장이 화합 행보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왔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