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 서소문 별관 건물들을 잇는 지하통로. 구속 피고인들을 출석시키는 호송로로 사용되던 길이다. 김재홍 기자 nov@donga.com
○ 공무원도 모르는 시청 지하통로
박원순 서울시장의 집무실이 있는 서소문 별관 1동 앞 지하주차장 남쪽 벽에는 출입문이 하나 있다.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천장과 바닥 벽면 등 4면이 견고한 콘크리트 지하통로가 나온다. 지상에서 50∼60cm 아래에 있는 이 통로는 너비 2.3m, 높이 2.2m로 어른 2, 3명이 한번에 횡대로 지나다닐 정도의 크기다. 서울시립미술관 쪽을 향해 30여 m 뚫려 있는데 중간에 서소문 청사 2동 지하 1층으로 연결되는 갈림길도 있다. 갈림길을 지나면 5동 지하 1층으로 연결된다. 5동에서 서울시립미술관 쪽으로도 통로의 흔적이 있지만 2002년 미술관 리모델링 공사 때 콘크리트로 모두 채워 지금은 막혀 있다.
지하통로는 건물들 사이로 나 있어 S자 형태로 구부러져 있다. 언덕 위에 있는 서울시립미술관 쪽을 향해 있어 약간 오르막 형태다. 5동으로 가는 길목에는 계단도 있다. 군데군데 조명이 있긴 하지만 어둡고 습한 게 으스스한 분위기도 감돈다.
○ 구속 피고인이 법정 향하던 호송로
시장과 공무원이 행정업무를 보는 곳에 비밀스러운 지하통로가 왜 필요한 걸까. 사실 이 통로는 시가 만든 게 아니다. 서소문 청사의 이전 주인이던 법원과 검찰이 만든 통로다.
지금 법조타운 하면 모두 서초동을 떠올리지만 예전에는 대법원과 대검찰청 등 법원 검찰청사가 현재 서울시청이 자리 잡은 서소문에 모여 있었다. 1동은 대검찰청과 서울고·지검이 있었던 검찰종합청사였다. 2동은 서울고·지법이 있던 서울법원청사였고 5동 건물은 서울법원청사 별관이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옛 대법원 건물이다. 지하통로는 옛 검찰청사와 법원청사를 연결했던 셈이다.
그렇다면 용도는 뭘까. 정답은 구속 피고인을 법정에 출석시킬 때 쓰던 호송로다.
윤재윤 춘천지법원장은 “당시 서소문 법원 청사에는 피고인들을 잠시 가둬둘 장소가 없어 구속 피고인들이 검찰청 구치감으로 호송된 뒤 각자 재판 일정에 따라 옆 건물에 있는 법정으로 출석했다”며 “지하통로를 이용하면 도주 우려가 거의 없고 포승에 묶인 피고인의 모습이 외부에 노출되지도 않아 인권보호 측면에서도 좋았다”고 말했다. 서소문에서는 ‘이철희·장영자 사건’(1982년), ‘5공 비리사건’(1988년) 등 굵직굵직한 사건의 수사와 재판이 진행됐고 당시 구속된 유명인사들이 이 통로로 법정에 출석했다.
이재홍 전 서울행정법원장은 “장마철에는 사건기록이 젖지 않도록 이 통로를 이용해 다른 건물로 옮기곤 했다”고 기억했다.
○ 지금은 제설도구 창고로
1995년 대법원과 대검찰청을 끝으로 법원과 검찰이 모두 서소문 청사를 떠나면서 지하통로는 별반 쓸모가 없어졌다. 시는 이곳에 제설, 청소 도구를 쌓아두고 있다. 유석윤 시 청사운영1팀장은 “2007년 2동 뒤편에 압축천연가스(CNG) 충전소를 만들 때 공사지역 바로 옆 지하에 빈 공간(지하통로)이 있다고 해 깜짝 놀랐다”며 “콘크리트로 메우는 방법도 검토했지만 역사적 의미도 있고 창고 등으로 쓰임새도 있어 지하통로 안에 철골구조물(H빔)을 세워 지반 보강공사만 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김재홍 기자 no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