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가방 천사 故김우수 씨가 퍼뜨린 기부 씨앗… 곳곳서 따뜻한 열매
지난달 말 아동보호전문기관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이런 질문이 담긴 편지 한 통이 왔다. 몇 달 전부터 재단에 후원금을 보내기 시작한 20대 재소자 정모 씨가 보낸 편지였다. 그는 편지에서 “감옥에 있는 동료들이 아이들을 돕고 싶어 하는데 이곳에선 현금을 쓸 수가 없다”며 “우표나 수입인지로라도 후원금을 내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정 씨는 동료 수감자들에게 ‘나눔 바이러스’를 전염시킨 주인공. 그의 마음을 움직인 사람은 중국집 배달원 김우수 씨(사진)였다. 김 씨는 월급 70만 원을 쪼개 다섯 어린이를 도와오다 9월 23일 배달 중 교통사고로 숨을 거뒀다. 정 씨는 “김 씨도 감옥에 있을 때 기부를 시작했다는 기사를 보고 저와 동료들이 가슴에서 뭔가 뜨거운 걸 느꼈다”고 했다.
○ 교도소에서 온 편지
서울 중구 무교동 어린이재단 사무실에 교도소 직인이 찍힌 편지가 처음 도착한 건 10월 3일. 스스로를 ‘28세 정모 씨’로 소개한 편지의 작성자는 “9월 27일 동아일보에 실린 고 김우수 씨 사연을 접했다”며 “주위 이웃에게 피해만 끼치며 살아온 지난 28년간의 내 인생을 돌이켜보니 너무 부끄러워 눈물이 나기도 했다”고 썼다.
올 9월 숨을 거둔 ‘철가방 천사’ 김우수 씨를 따라 기부를 시작한 20대 재소자 정모 씨의 편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제공
정 씨는 재단 측 안내를 받아 10월부터 두 달째 작업상여금으로 모은 돈으로 12세 남자 어린이를 후원하고 있다. 매달 2만 원씩 정기 후원을 하기로 했지만 지난달에는 5만 원 많은 7만 원을 보내왔다. 그는 “나눔에 동참하는 게 처음이라 아직은 어색하긴 하지만 사회로 복귀하면 조금씩 후원 액수를 늘려가겠다”며 “후원 아동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겠다”고 약속했다.
전남 순천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전선 씨(46)도 김 씨의 사연을 접하면서 일상에 변화가 생겼다. 최근 그의 주변에 1004명의 천사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는 두 딸이 각각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들어가던 2008년 12월 더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어린이재단에 기부를 시작했다. 월 5000원으로 시작했던 후원 규모는 어느덧 30만 원으로 커졌다. 아빠를 따라 용돈을 쪼개 기부를 시작한 두 딸도 1년에 1000원씩 늘려 지금은 매달 1만1000원씩을 기부한다.
그는 후원을 처음 시작하면서 주변 친구와 가족에게도 기부의 중요성을 알려야겠다고 다짐하며 목표를 1004명으로 잡았다. 이 좋은 걸 어찌 나 혼자만 즐길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었다. 최근 4년간 어머니와 장모님 등 가족은 물론이고 이웃, 친구 등을 찾아다니며 일대일로 설득했다. ‘나중에 시의원이라도 하려고 하느냐’는 싸늘한 시선도 종종 느껴졌지만 크게 아랑곳하지 않았다.
김 씨의 사연을 접한 뒤로는 더욱 홍보에 열을 올렸다. 이 씨는 9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돌아가신 김우수 씨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수월하게 살아왔던 만큼 더 치열하게 기부해야겠다는 생각을 수십 번도 넘게 했다”고 했다. 그 덕분에 10월 초 그의 추천을 받아 어린이재단에 후원을 시작한 사람이 1004명을 넘어섰다. 그는 “주변에 천사 같은 사람이 워낙 많았다”고 공을 돌렸다.
어린이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4만1976명이던 후원자는 올해 11월 17만3213명으로 늘었다. 1년 만에 무려 22%가 증가했다. 어린이재단은 김 씨의 뜻을 기리기 위해 내년 초 어린이재단 사무실에 그의 유품을 전시할 예정이다.
고현국 기자 m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