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진 “재창당때 입당 말아야”… 원희룡 “새집에 짐 다가져가나”장제원 “MB, 시대 역할 다해”
한나라당 사무총장과 최고위원을 지낸 원희룡 의원은 12일 의원총회에서 “결별할 거 결별하고 반성해야 한다. 헌집에서 새집 갈 때 짐을 다 가져 가야 하느냐. 먼저 이 대통령과의 관계를 버려야 한다. 정리를 해야 한다. 재창당을 하면 집권당이 아니라 야당의 길을 가야 한다. 대신 임기를 잘 마칠 수 있도록 임기 만료까지 관계를 잘 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을 버리고 갈 ‘짐’으로 비유한 것이다.
이에 앞서 한나라당 초선 쇄신파 모임인 ‘민본21’ 간사를 지낸 권영진 의원은 이날 오전 CBS 라디오에 나와 당의 재창당 과정에서 이 대통령이 새로운 당에 입당하지 않는 방식으로 탈당하는 것에 대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권 의원은 “내년 총선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 대통령은 어떤 정파에 속하기보다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선거를 관리하고 국정을 마무리하는 것이 국민을 위해 옳은 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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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범친이계 초선인 장제원 의원은 의총에서 “이 대통령과 단절이 아니고 조용한 정리가 필요하다. MB(이명박)는 MB 시대의 역할을 다한 것”이라고 말했다. 단절이라는 표현 대신 정리라고 말했지만 이 대통령과 선을 그어야 한다는 취지는 마찬가지였다.
▼ “결별할 것 결별… 정리할때” 역대 대통령 임기말과 비슷 ▼
이는 역대 정권 임기 말에 집권당이 인기 없는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했던 것과 사실상 맥을 같이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선거를 통해 당선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을 앞두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여당의 당적을 포기했다. 청와대는 탈당 요구 발언이 이어져 곤혹스러운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하며 예의주시하고 있다.
권영진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 대통령이 신당에 참여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은 재창당을 하자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들어있는 것”이라며 “다만 대통령에 관한 일이라 조심스럽고, 아무도 안 꺼낼 뿐”이라고 말했다. 다른 쇄신파 의원도 “내부에서 공식 논의된 것은 아니지만 (권 의원 의견에) 어느 정도 묵시적인 공감이 있는 상태로 봐야 한다”고 전했다.
이런 발언에 대해 한 친이 직계 의원은 “대통령 때문에 국회에 들어오고 혜택을 받은 의원들이 이 대통령과의 결별을 언급하는 것을 들으니 착잡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친이계가 공개적으로 이들의 발언을 반박할 수 없는 것이 한나라당의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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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이날 오전 권 의원 등의 발언을 두고 크게 개의치 않겠다는 반응을 보인 청와대는 원희룡 의원 등도 같은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것이 알려지자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한 고위 관계자는 “권 의원 등은 한나라당 내 대표성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초선 의원의 발언에 일일이 대응할 가치를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내에서 일정한 발언권을 갖고 있는 원 의원의 발언까지 알려지자 직접 반응을 삼가며 사태를 주시했다.
그동안 청와대는 이 대통령이 1990년대 이래 임기 말에 탈당하지 않는 첫 대통령이 될 것이란 점을 강조해 왔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