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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비대위장’엔 합의 했지만… “비대위, 재창당 역할만” vs “朴에 전권 줘야”

입력 | 2011-12-13 03:00:00

한나라 쇄신 5시간 격론




한나라당은 12일 당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한 의원총회를 열어 5시간 넘게 논쟁을 벌였지만 결국 쇄신의 종착점을 놓고 격렬하게 충돌했다. 박근혜 전 대표를 당의 ‘구원투수’로 내세우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에 상당한 권한을 줘야 한다는 데도 공감대를 이뤘다.

문제는 ‘재창당’ 결의 여부였다. 수도권 의원들과 쇄신파들은 박 전 대표가 중심에 서되 재창당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의 간판을 아예 내리자는 얘기다. 박 전 대표가 재창당에 동의하는 게 ‘박근혜 비대위’ 출범의 전제 조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에는 박 전 대표만으로는 수도권에서 이길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반면에 친박(친박근혜)계는 비대위에 모든 걸 위임하자고 맞섰다. 비대위를 ‘재창당 준비위’로 규정하는 순간 박 전 대표의 권한과 행보는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는 탓이다. 또 박 전 대표는 “재창당 수준의 쇄신”을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한나라당의 간판을 내리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창당 결의 여부는 13일 다시 의총을 열어 논의하기로 했다. 그 대신에 19일 당 전국위원회를 소집해 비대위가 당의 최고의결기구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당헌을 개정하기로 합의했다. 현재 당헌에는 비대위와 관련한 규정이 전혀 없다. 하지만 13일 의총에서 친박계와 ‘비박(비박근혜) 진영’이 재창당 문제의 절충점을 찾지 못하면 ‘박근혜 등판’ 자체가 헝클어질 가능성이 있다.

친박 핵심 관계자는 “재창당을 전제로 한 비대위에는 박 전 대표가 나설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 33명 발언 21명이 재창당 주장

중진끼리… 한나라당 3선 이상 중진 의원들이 12일 서울 여의도 렉싱턴호텔에서 조찬 회동을 갖고 ‘홍준표 체제’ 붕괴 이후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왼쪽부터 안상수 홍사덕 김형오 이해봉 의원.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12일 의총에는 한나라당 전체 의원 169명 중 82%인 139명이 참석했다. 이 중 33명이 발언에 나섰으며 이 중 21명은 재창당을 요구했다. 나머지 12명은 비대위에 전권을 위임하거나 한나라당이 존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재창당 요구가 거셌다. 권영진 의원은 “박 전 대표가 공천하고 정책을 쇄신하면 한나라당의 이름으로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보느냐”며 친박 진영을 몰아세웠다. 이어 “박 전 대표가 정치를 너무 안 보여주는 것 아니냐. 그러니까 안철수(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가 나오니 훅 가지 않느냐(지지율이 떨어지지 않느냐). 박 전 대표가 정치적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태근 의원도 “정당정치의 위기를 말한 분(박 전 대표를 지칭)이 정당정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며 “당을 해체하고 신당을 만드는 게 보수정치의 가장 책임 있는 모습이다. 이것이 비대위가 할 일이다”고 주장했다. 임해규 의원은 “박 전 대표를 내세운다고 해서 현 상황의 위기를 극복하기는 어렵다고 본다”며 “박 전 대표도 여기(의총장)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우여 원내대표는 의총을 시작한 지 4시간쯤 지난 오후 6시경 단상에 나서 “박 전 대표에게 전권을 부여하기 위해 전국위를 소집해 당헌을 개정하는 내용을 먼저 의결하자”고 요청했다. 하지만 정태근, 장제원 의원 등이 “박 전 대표가 재창당 요구를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의총은 1시간 동안 더 계속됐다.

○ 친박, “박 전 대표에게 전권 줘야”

중진끼리… 한나라당 3선 이상 중진 의원들이 12일 서울 여의도 렉싱턴호텔에서 조찬 회동을 갖고 ‘홍준표 체제’ 붕괴 이후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왼쪽부터 안상수 홍사덕 김형오 이해봉 의원.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재창당을 주장하는 의원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나자 박 전 대표의 핵심 측근인 최경환 의원이 단상에 올랐다. 최 의원은 “의총에서 논의된 내용을 비대위에 전달하면 된다”며 “비대위를 구성해 여러 안건을 논의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최 의원은 18대 국회 들어 자신의 발언이 박 전 대표의 뜻으로 비칠 수 있어 의총에서 발언을 자제해 왔으나 이날 비대위가 재창당 준비위로 성격이 한정될 가능성이 커지자 이례적으로 직접 나선 것이다.

친박계인 이종혁 의원은 “비대위가 무엇을 언제까지 어떻게 할 것인지를 모두 박 전 대표에게 맡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고 말했다. 김영선 의원도 “재창당은 비대위를 구성하는 것과 차원이 다른 문제다. 비대위에서 신당이든, 재창당이든 논의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친박계는 이날 비박 진영의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 친박계부터 계파를 해체하고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기환 의원은 “공식적, 실질적, 명시적으로 친박을 해체할 필요가 있다”며 “필요하다면 이상득 의원과 같은 (총선 불출마) 결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상현 의원도 친박의 자발적 해체를 주장하며 “친박 의원이라고 해서 박 전 대표에게 기대 무임승차를 하려 해서는 안 된다”며 “지금은 친이(친이명박계)라고 소외감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날 윤영 의원은 한나라당의 현재 상황을 야구에 비유했다. 윤 의원은 “7회말 6 대 0 정도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박근혜 투수가 (마운드에) 올랐는데 감독이 무슨 주문을 하겠느냐”며 “‘네 마음껏 해봐라’는 말밖에 할 수 없다”고 말했다.

○ 고심하는 박 전 대표

박 전 대표는 새로운 당 지도부가 종전과 같이 계파별 나눠 먹기 식으로 구성되는 것과, 당을 해체하는 역할을 맡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는 생각이 확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친박 핵심 의원은 “위의 두 가지가 해결되지 않으면 박 전 대표가 나서지 않겠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일부 친박 의원이 “박 전 대표에게 공천권을 줘야 한다”는 발언을 하면서 당내 논란이 공천권으로 번지자 상당히 난감해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친박 진영의 다른 의원은 “박 전 대표는 공천권에 관심이 없다”며 “대선을 앞두고 대선주자가 국민을 속이며 사적으로 공천권을 남용하는 게 상상이나 되는가”라고 반문했다.

당내에서 박 전 대표의 뒤를 받쳐줄 백업 선수가 없다는 데 이견이 없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승리투수가 될 수 있느냐를 놓고는 이날 큰 견해차를 보인 셈이다. 친박계는 어차피 다른 투수도 없으니 믿고 맡기자고 한다. 비박 진영은 9회말 역전의 기회가 올지 모르니 지금이라도 새로운 선수를 데려오자고 한다. 누구도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당내 위기감만 커져가고 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