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스페인 월드컵때의 소크라테스. 동아일보DB
소크라테스와 함께 밤을 지새운 사람이라면 지금도 그의 몸에서 풍기는 카차카(브라질 술)와 니코틴 냄새를 떠올릴 것이다. 우리는 술과 담배를 두려워하지만 소크라테스에겐 인생의 동반자였다. 그는 필요하면 언제든 끊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지나친 음주로 죽은 탓에 그의 생각은 틀렸다는 것이 증명됐다.
소크라테스의 인생과 축구는 예술처럼 멋있었다. 그는 펠레와 디에고 마라도나, 요한 크라위프,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리오넬 메시 등 역대 축구 천재 톱5에 못 미칠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다른 선수들이 환상적인 플레이를 펼치도록 투혼을 자극했고 자신은 지나치리만큼 냉정한 기술축구를 펼쳤다. 플레이메이커로서 넓은 시야와 자로 잰 듯한 패스로 선수들을 춤추게 만들었다. 턱수염이 덥수룩하고 키가 193cm나 되는 그는 다리가 다른 사람 복부에서 시작할 정도로 롱 다리다. 그는 언뜻 보기엔 느리고 어색해 보인다. 하지만 그가 왼쪽 어깨를 낮추며 볼을 컨트롤해 오른쪽으로 빠져나갈 땐 세계적인 선수들도 넋을 잃고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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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월드컵 멤버였던 수비수 주니오르는 “어떤 사람이든 소크라테스와 함께 지내면 그가 최고의 선수이면서도 지적이고 인간적인 사람이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사실 축구장이 아니라 인생 전체에서도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을 찾기 힘들다.
코린티안스에서 297경기에 출전해 172골을 터뜨리면서도 그는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에 전념했다. 대학에 다니면서 보타보고에서 뛰었다. 브라질 최고의 스타임에도 그는 군사정부와 각을 세웠다. ‘코린티안스 민주주의’란 단체를 만들어 축구를 통해 독재에 저항했다. 그는 남미 혁명의 영웅인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 그리고 평화와 반전의 아이콘인 가수 존 레넌 등을 신봉했다. 말년에는 철학과 리더십에 대해 강연을 하기 위해 리우데자네이루와 영국 런던을 오갔다.
6명의 자녀를 둔 소크라테스는 스포츠와 정치에 대한 칼럼, 소설을 썼고 음악에도 심취했다. 그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란 소설을 쓰다 세상을 떴다. 책의 주제는 ‘지구촌에서 온 팬들이 브라질이 주는 재미와 혼란, 그리고 부정부패에 충격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그는 “너무 허술하게 준비해 이런 식으로 치르려면 브라질이 월드컵을 반납하는 게 낫다”고 했으며 “공공자원을 활용해 개인 욕심을 채우는 격”이라며 브라질의 월드컵 개최에 비판적이었다.
소크라테스가 떠나는 날 브라질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코린티안스 선수들은 우승컵을 대선배에게 바쳤다. 하지만 리그 마지막 날 팔메이로와 0-0 무승부로 끝난 경기에서 양 팀이 2명씩 폭행으로 퇴장당하는 사태는 현재 브라질 축구가 소크라테스가 추구하던 축구가 아님을 보여줘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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