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지역 선관위장 “4대 정당 관계자들 모여 각당 득표비율까지 조율” 부정선거 파문 확산될 듯
4일 치러진 러시아 연방하원(두마) 총선에서의 선거부정에 대한 항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모스크바의 한 투표소를 책임진 지역 선거관리위원장이 직접 선거부정을 폭로하고 나섰다.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가 격화됨에 따라 군 병력까지 투입된 상황에서 부정선거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상황이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 선관위원장 A 씨는 6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신분이 드러나면 해고 등 피해를 당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도 자신의 선거구에서 있었던 내용을 상세히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선거 전 통합러시아당을 포함한 ‘주요 4개 정당’ 관계자가 모여 통합러시아당 등 각 당의 득표율을 어느 수준으로 할지에 대해 협상을 벌였다. 통합러시아당은 68∼70%를 희망했으나 너무 높다는 지적이 나오자 65%로 양보했다는 것이다. 통합러시아당뿐 아니라 다른 주요 정당도 득표율 조작에 동참한 것을 보여준다.
이 같은 합의에 따라 A 씨가 담당한 투표소의 선관위 직원들은 참관인의 눈을 피해 하루 종일 ‘푸틴 당(통합러시아당)’에 기표해놓은 용지를 몰래 투표함에 넣었다. 한 차례에 50장씩 넣기도 했다. 직원들은 용지를 반으로 접어 넣는 사전 훈련을 받기도 했다. A 씨는 주머니에서 꺼낸 30∼50장이 한 묶음인 용지를 어떻게 접어 투표함에 넣는지 직접 재연해 보이기도 했다. 그는 선거 참관인을 멀리 벽 쪽에 앉히기도 했으나 한 참관인은 12시간 동안 화장실도 가지 않고 열정적으로 감시해 애를 먹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결국 투표 종료 10분 전 경찰을 동원해 그 참관인을 추방했다.
한 투표소에서 몰래 넣을 수 있는 사전 투표용지 장수가 제한되어 있어 ‘푸틴 당’에 기표한 용지를 직원에게 줘 다른 투표소들을 다니며 집어넣게 하기도 했다. 투표권이 없는 이주민들을 유권자로 둔갑시킨 후 투표하도록 하기도 했다.
한편 러시아 시위대는 당국의 저지에도 앞으로 매일 시위를 벌이겠다고 천명했다. 자신들을 ‘사기꾼과 도적 집단에 대한 반대자’로 부르는 시위대는 7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매일 오후 7시에 집회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공정선거를 위한 사람들’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조직은 10일 오후 모스크바에서 시위를 열겠다고 밝혔으며 현재까지 5000명이 페이스북을 통해 참가의사를 보였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7일 인테르팍스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지도자들은 이번 선거가 많은 부정이 있었고 국민의 뜻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며 “선거를 다시 치르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