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건우&파리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
협연을 마친 뒤 손을 맞잡고 인사하는 피아니스트 백건우(왼쪽)와 파리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파보 예르비. 크레디아 제공
파리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은 세련된 디자인의 의상만큼이나 감각적인 연주 센스를 선보였다. 모든 악기의 소리가 밝고 따뜻하며 화려했다. 특히 저마다 개성 있는 개인기를 뽐내는 목관 파트가 음악을 형형색색으로 다채롭게 물들이는 주역이었다. 실크같이 윤택한 현악군과 반짝반짝 빛나는 금관군도 매혹적이었다. 예르비는 주자들의 자발성을 북돋우다가도 강력한 카리스마로 통제해 투명한 밸런스의 사운드를 실현했다. 첫 번째 곡인 메시앙의 ‘잊혀진 제물’은 현대음악임에도 한 편의 인상파 회화처럼 선명한 아름다움으로 각인됐다.
라벨 피아노 협주곡에서 예르비와 파리오케스트라는 경쾌하고 묘한 이미지의 화음을 인화했다. 상쾌한 에스프리와 나른한 몽상과 요염한 표정이 공존하는, 이상(理想)에 가까운 라벨 음악이었다. 백건우의 피아노는 터치가 눅눅하고 섬세하며 무척이나 과묵했다. 귓가를 간질이듯 잔물결로 살랑거리는 2악장이 그와 딱 맞아 분위기가 참으로 아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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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는 성에 차지 않는 듯 네 곡의 앙코르를 연거푸 선사했다. ‘페트루슈카’ 춤곡, 비제 ‘어린이의 놀이’ 중 갤럽, 극단적으로 늦은 중간부의 약음이 숨을 죽이게 하는 시벨리우스 슬픈 왈츠, 열광으로 환호작약하는 비제 ‘아를의 여인’ 중 파랑돌이 연주됐다. 이로써 예르비는 자신의 시대가 왔노라고 선언했다.
이영진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