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8/한한 지음·김미숙 옮김/288쪽·1만2500원·생각의나무
낯선 길 위에서 마주치는 인간 군상을 그린 로드 픽션 ‘1988’. 생각의나무 제공
화자인 ‘나’는 교도소에 수감된 뒤 출소를 앞둔 친구를 만나기 위해 고물 스테이션왜건을 몰고 먼 길을 떠난다. 이 고물차는 폐차 직전의 것을 친구가 고쳐서 ‘나’에게 준 것. 1988년식이라 그냥 ‘1988’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길을 가다 언제 고장 나 멈춰버릴지 모르는 ‘1988’은 ‘나’를 비롯한 바링허우 세대의 불안한 현재를 상징하는 듯하다.
단순할 수도 있는 평면적인 여정은 ‘나’의 과거 회상 장면이 엇갈려 펼쳐지며 한층 입체감 있게 변한다. 특히 ‘나’가 만났던, 그러나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친구와 선배들의 비극적 결말은 ‘나’를 상실감과 허무함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게 만든다. 졸업 후 신문기자가 된 ‘나’가 직면하게 되는 부조리한 사회 현실은 개인의 의지로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다. ‘나’는 심지어 옛 여자친구와 청개구리 두 마리를 냄비에 넣은 뒤 서서히 가열하며 점차 고통스러워하는 청개구리들을 관찰하기도 한다. 마치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보는 듯하다.
작품을 읽는 동안 내내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듯하고, 허름한 여관의 눅진한 침대에 피곤한 몸을 누인 느낌이다. 간헐적으로 터지는 유쾌한 대사와 상황들도 막상 웃고 난 뒤에는 왠지 짠한 기분을 가져온다. 최근 ‘중국의 하루키’로 불리는 이 작가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상실의 시대’에서 그랬던 것처럼 간결하고 잔잔하게 청춘들의 방황을 그려낸다.
여정은 닷새 만에 끝난다. 그리고 2년 뒤의 모습이 잔잔히 그려진다. 책장을 덮으면 가슴이 아련해지고, 여운이 깊게 남는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