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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도서관 다락방서 책에 빠져봐

입력 | 2011-12-01 03:00:00

건축가 故 정기용씨 마지막 작품 김해 ‘기적의 도서관’ 문열어
지역 기후-역사까지 고려해 설계




다락방으로 가는 계단 김해 기적의 도서관 내 ‘4차원의 방’ 계단은 마치 시골 옛집의 작은 다락으로 가는 통로 같다. 아이들이 마음껏 상상력을 펼칠 수 있도록 한 정기용 교수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진다.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제공

“건축은 근사한 형태를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섬세하게 조직하는 일이다. 건축가 역시 건물을 설계하는 사람이 아닌, 삶을 설계하는 사람이다.”(정기용 ‘사람 건축 도시’)

올 초 지병으로 타계한 건축가 정기용 성균관대 석좌교수(1945∼2011·사진)의 마지막 설계 작품인 김해 기적의 도서관이 11월 30일 문을 열었다. ‘창의적인 어린이 전용 도서관을 짓는다’는 목표 아래 2003년부터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과 함께해온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는 정 교수의 대표작으로 꼽혀왔다. 순천, 진해, 제주, 서귀포, 정읍 등 다섯 곳에 도서관을 세웠다.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안찬수 사무처장은 “김해 기적의 도서관은 정 교수의 유작이자 결정판”이라고 강조했다.

“정 교수님은 ‘기적의 도서관’이 한 건축가의 상상력이나 기법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고 여러 차례 이야기하셨어요. 도서관을 이용하는 어린이와 엄마, 그리고 지자체와 시민단체의 경험과 관찰, 다양한 발상에 건축가의 지혜를 조금 더해 완성했을 뿐이라는 거죠. 그런 감응(感應)의 결정체가 바로 이 도서관입니다.”

2008년 2월 정 교수는 도서관 터인 경남 김해시 장유면 율하리 지역을 처음 답사했고, 1년 후인 2009년 3월 도서관의 큰 얼개를 완성했다. 안 사무처장은 “김해 지역의 풍토와 기후, 역사, 살아가는 이들의 상황까지 고려한 설계였다”고 설명했다.

한 예로 당시 이 지역엔 아파트 단지가 지어지고 있었다. 정 교수는 “이 도서관이 ‘아파트 숲’이라는 불모지적 상황을 치유하는 ‘생명의 정원’이 돼야 한다”고 시종일관 강조했다. 도서관 내부 구석구석엔 아이들이 자신을 숨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한옥의 다락같은 공간이 있어야 아이들이 마음껏 상상력을 펼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2010년 8월 정 교수님이 마지막으로 이곳을 찾으셨죠. 당시 건강이 무척 좋지 않으셨는데도 안전모를 쓰고 현장을 꼼꼼히 둘러보셨어요. 도서관이 새 건축물인데도 오래된 건물처럼 지역에 녹아든 것을 가장 마음에 들어 하셨어요. 이렇게 개관하는 모습을 함께 보지 못한 게 아쉬울 뿐입니다.”(안찬수 사무처장)

책장이 아기자기하게 배치된 도서관 내부.(왼쪽), 아파트 숲과 경쟁하지 않는 도서관 전경.(오른쪽 위), 11월 30일 김해 기적의 도서관 개관식에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오른쪽)과 권양숙 여사(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참석했다. 김해시 제공(오른쪽 아래)

11월 29일 저녁에 있었던 개관 전야제와 30일 개관식에 참여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정 교수의 부인 김희경 여사는 “남편과 함께 다락이 있는 공간을 꿈꿨다. 그 꿈이 그대로 실현된 도서관을 보니 무척 기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우와, 여기 놀이터 같아.”

이날 오후 3시 개관식 테이프 커팅과 함께 신발을 벗고 도서관 안으로 뛰어 들어간 대여섯 살 아이들은 하나같이 함성을 질렀다. ‘4차원의 방’ 계단을 따라 뛰어 올라가니 자그마한 다락이 나왔다. 한 아이가 두 다리를 뻗고 앉았다. 아이들은 구석구석 숨은 공간을 귀신처럼 찾아냈다. 도서관 1층 로비에는 정 교수를 추모하는 전시가 마련됐다.

개관식 행사는 하루 종일 추적추적 내린 비 때문에 매끄럽게 이어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기자가 도서관 내 영유아방에서 만난 한 엄마는 “비가 올 때 이곳이 더 좋다”고 했다. 아이와 함께 책도 보고, 바닥에 누워 쉬기도 하는 따스한 놀이방 역할을 제대로 하기 때문이다. 볼이 발그레한 아이, 오래된 것 같아 더 정겨운 새 도서관 건물, 안경 쓴 어린아이 같은 정 교수의 사진 속 미소가 꼭 닮아있었다.

김해=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