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주필
2년 전 일본 민주당이 정권교체에 성공한 후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동아시아공동체’라는 꿈을 제창했다. 유럽연합(EU) 모델을 염두에 두고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과 한중일 3국이 중심이 되자는 구상이었다. 여기서 미국은 아예 배제했다.
미국으로서는 기분이 언짢아진 게 당연했다. 게다가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이전 문제가 꼬이면서 하토야마 정권은 이내 막을 내렸다. 뒤를 이은 간 나오토 총리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희망했다. 동아시아공동체라는 말은 사라지고 그 대신에 미국과 호주가 주도하는 TPP 참가 문제가 대두됐다. 노다 총리는 그 뒤를 잇고 있다.
中, 배타적 제국 지향땐 주변국에 민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이래 아태 지역에 큰 관심을 보여 왔다. 미국의 경제침체가 지속되고 있어 세계 성장의 중심인 이 지역에 든든한 발판을 구축하고 싶은 것이다.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 전망이 불투명한 오바마 정권으로서는 매우 중요한 전략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일본은 이번에 TPP 협상 참여 의사를 밝힘으로써 중국보다 미국을 제1의 파트너로 선택했다. 중국은 경제적으로 일본과 관계가 깊지만 군사적 위협을 느끼게 만들었다. 지난해에는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를 놓고 큰 트러블을 일으키기도 했다. 일본이 TPP에 참가하면 미국의 온갖 요구에 시달릴 각오를 해야겠지만 그래도 안보적으로 신뢰할 만한 동맹국의 압박이기에 이 길밖에 없었을지 모른다.
옛 소련 붕괴 후 ‘민주주의의 제국(帝國)’을 자부한 미국과 아시아의 새로운 맹주를 지향하는 중국. 이 두 대국을 생각하면 이달 3일 세상을 떠난 권오기 전 동아일보 사장을 떠올리게 된다. 필자가 존경하는 대선배인 권 씨는 본인과 대담 형식으로 ‘한국과 일본국’(한국판은 2005년 샘터)이라는 책을 집필했는데 책 속에는 미국과 중국에 대해 논평한 대목이 있다. 이 책은 한일 양국에서 동시 출판되기도 했다.
강대국화하고 있는 중국이 배타적인 제국을 지향한다면 그것은 주변국에 민폐를 끼치는 일이다. 그러나 만약 중국이 한 국가로서 자기주장을 하기보다 동아시아 문명권이라는 발상을 전면에 내세운다면 어떨까. 중국이 발명한 한자는 동아시아 문명의 주춧돌이다.
한자문화권에서 통용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중국 고사성어가 있다. 한국이나 일본에도 널리 알려져 있는 말이다. 먼저 자신의 행동을 바르게 한 후 가정을 잘 건사하고 그 다음에 국가를 다스리면 천하를 평정하게 된다는 교훈이다. 권 선배는 이 ‘천하’라는 단어를 현대적 감각으로 바꿔 쓰면 ‘국제질서’라고 했다. 정말 지당한 지적 아닌가. ‘아예 한중일 3국에 북한과 대만을 합쳐 한자의 공통화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는 대선배와 필자의 일치된 꿈이기도 했다.
군사력 못지않게 소프트파워 갖춰야
한일 양국으로서는 미국을 취할까 중국을 취할까라는 양자택일의 발상은 소모적이다. 자유와 민주주의 등의 가치관으로 묶여 있는 미국과의 관계는 기본이지만 옛 동아시아 문명을 존중해 중국과 함께 팔을 걸고 나가는 것도 한일 양국으로서는 가능한 길이다.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