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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비상食’ 시장 열고 ‘일상食’으로 도약

입력 | 2011-11-11 03:00:00

케이스 스터디: 15년째 장수히트 CJ제일제당 ‘햇반’




12월 12일 출시 15주년을 맞는 CJ제일제당 ‘햇반’은 국내 상품밥 시장에 ‘무균 포장밥’ 카테고리를 처음으로 만들어 낸 브랜드다. 밥은 ‘집에서 엄마가 해 주는 것’이라는 한국인 특유의 고집스러운 소비 행태를 거슬러 새로운 식문화를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햇반은 지난 15년간 몇 번의 위기를 겪었다. 1996년 출시 이후 즉석밥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했지만 2000년대 들어 경쟁사들이 잇따라 뛰어들며 가격 경쟁을 벌이자 급성장에 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햇반은 품질 개선을 위해 과감한 투자를 지속해 결국 잃었던 시장점유율을 탈환했다. 올해 들어서는 연간 누적 판매량이 1억 개를 돌파해 연 매출액이 1100억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는 햇반 성공 사례를 집중 분석했다.

○ 알파미에서 동결건조미, 이천쌀에 이르는 2전3기의 도전


DBR 그래픽

CJ가 맨 처음 상품밥 관련 신제품 기획에 돌입한 것은 1989년이다. 핵가족화의 확산, 맞벌이 부부의 증가 등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로 인스턴트식품 형태의 상품밥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측, 알파미(뜨거운 물만 부으면 밥이 돼 군용 전투식량 등으로 사용되는 쌀)를 활용한 상품밥 개발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얼마 못 가 중단됐다. 알파미는 ‘생존’을 위한 식량 성격이 강했다. 따라서 아무리 첨단기술을 접목해도 원하는 밥맛을 내지 못했다. 이 와중에 1993년 천일식품 등 경쟁사들이 볶음밥, 필라프 등의 형태로 냉동밥을 출시했다. 한 번 실패를 경험한 데다 경쟁사에 선수를 빼앗긴 CJ는 이번엔 동결건조미를 활용해 상품밥 시장에 재도전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난관에 부닥쳤다. 최동재 CJ제일제당 햇반팀장은 “아무리 노력해도 마치 스펀지를 씹는 듯한 느낌을 없앨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상품밥 신제품 개발을 위한 돌파구 찾기에 골몰하던 CJ는 1995년 우리와 식문화가 비슷한 일본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일본에서 상품밥 시장을 석권한 ‘무균 포장밥’에 주목했다. 무균 포장방식은 갓 지은 밥을 반도체 공장 수준의 클린룸에서 무균 상태로 포장함으로써 밥을 장기간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이다. 알파미, 동결건조미처럼 원재료 단계에서 인위적인 수분 제거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갓 지은 밥맛과 식감을 살리기가 쉬웠다.

해결책을 찾은 CJ는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경기도 이천쌀을 사용해 시제품을 만들어 소비자 조사를 벌였다. 테스트 결과는 매우 긍정적이었다. 냉동밥 등 기존 상품밥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던 소비자들도 CJ의 무균 포장밥에는 합격점을 줬다. 이에 따라 CJ는 1996년 초 100억 원 규모의 설비 투자를 단행하고 그해 12월 국내 최초의 무균 포장밥 ‘햇반’을 내놓았다.

○‘5일→3일→1일’ 도정 시스템의 진화


출시 이후 햇반은 지금까지 크게 두 차례의 위기를 겪었다. 두 번 모두 경쟁업체의 진입에 따른 시장점유율 하락이다. 우선 2000년대 초반 농심(2002년)과 오뚜기(2004년)의 시장 진입으로 이전까지 80%대를 유지했던 점유율(포장 맨밥 매출액 기준)이 2005년 60%대로 주저앉았다. 하지만 CJ는 2008년 시장점유율을 70%대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두 번째 위기는 제3의 업체인 동원F&B의 가세로 찾아왔다. 경쟁사들의 저가 공세에 밀려 햇반의 점유율은 또다시 60%대로 내려갔다. 그러나 이 역시 9월 기준 76%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위기 때마다 시장점유율을 탈환해 온 비결은 ‘자가 도정 시스템’ 구축을 통해 밥맛을 개선한 덕택이다. 사실 손쉽게 점유율을 되찾아 오려면 다른 업체들처럼 가격 할인을 하면 됐다. 하지만 CJ 경영진은 가격을 건드리는 대신 CJ식품연구소에 “품질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해결책을 마련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이에 따라 연구원들은 2006년 여름 전국 각지의 미곡종합처리장(RPC)에서 도정한 백미를 부산에 있는 햇반 생산공장으로 이송하는 트럭에 올라탔다. 쌀을 아무리 냉장 보관한다 해도 여름철만 되면 햇반의 맛이 떨어지는 이유를 찾기 위해서였다. 트럭에 올라 타 이송 도중 도정미의 온도 변화를 체크하던 연구원들은 쌀 온도가 무려 섭씨 50도까지 올라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냉장 저장을 한다 해도 쌀의 신선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식품연구소는 4계절 내내 균일한 밥맛을 내려면 자가 도정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핵심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CJ는 그해 9월 부산 생산공장에 도정기를 들여왔다. 이후 CJ는 RPC에서 벼의 껍질(왕겨)만 벗겨낸 현미 상태의 쌀을 가져와 직접 도정해 햇반을 생산하고 있다. 2006년부터 원칙적으로 당일 도정이 가능해졌지만 공장을 가동하지 않는 주말을 고려해 자가 도정 시스템을 구축한 원년에는 ‘3일 내에 찧은 쌀’로 밥을 만든다고 홍보했다. 탄력적인 주말 교대조 근무로 완벽한 ‘1일 도정’이 가능해진 작년 5월부터는 ‘도정 하루 내에 갓 지은 밥’이라고 커뮤니케이션하고 있다.

한층 개선된 밥맛은 소비자들이 먼저 알아봤다. 2006년 3일 도정 시스템 공표 후 곧바로 점유율이 상승세로 돌아섰다. 지난해 악화된 실적을 올해 급속한 매출 성장으로 상쇄하고 있는 것도 1일 도정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알리면서부터다. 최동재 팀장은 “2006년 이전에는 RPC에서 도정된 백미를 가져와 햇반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송 기간과 저장 기간 등을 감안하면 도정한 지 평균 5일 지난 묵은 쌀로 햇반을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며 “늘 신선도를 갖춘 쌀로 햇반을 만들다보니 밥맛이 좋아진다”고 강조했다.

○‘비상식’에서 ‘일상식’으로 커뮤니케이션 점진적 전환


출시 이후 시장 성숙도에 맞춰 점진적으로 변하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전략도 햇반의 성공에 일조하고 있다. 초기에 CJ는 햇반을 ‘비상시 먹는 밥’으로 포지셔닝하는 데 초점을 뒀다. 이에 따라 아이들이나 남편 친구들이 집에 갑자기 들이닥쳐 밥이 모자랄 때, 혹은 가끔씩 밥하기 싫을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식의 TV 광고를 제작해 소비자 구매를 유도했다.

200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급하게 한 끼 때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하는 밥이 아니라 집에서 엄마가 정성스럽게 지어준 것처럼 맛있는 밥이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제품의 용도만을 부각시키기보다는 ‘맛있는 밥’이라는 제품 속성을 강조해 차별적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2000년대 후반에는 품질 개선을 위해 2006년과 2010년 각각 도입한 ‘3일 도정’ ‘1일 도정’ 시스템과 연계한 TV 광고를 내보냈다. 말로만 품질 개선을 외치는 게 아니라 실질적인 밥맛의 개선이 뒤따른 ‘진정성 마케팅’에 힘입어 소비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올해부터는 햇반을 ‘비상식’이 아닌 ‘일상식’으로 포지셔닝하기 위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1인 가구가 증가하고 햇반을 먹고 자란 세대가 성인 대열에 합류하면서 햇반의 일상식 시대를 열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가대표이자 친근한 남동생 이미지의 박태환 선수를 모델로 기용해 ‘밥보다 더 맛있는 밥’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햇반이다’ 등의 광고를 앞세우며 햇반에 대한 인식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고품격 경영저널 동아비즈니스리뷰(DBR) 93호(2011년 11월 15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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