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Narrative Report]스스로 묻는다 “자네, 다시 태어나도 연극배우 할 건가?”

입력 | 2011-11-10 03:00:00

무대 데뷔 20년 염동헌 씨의 ‘열정 → 가난 → 영화 외도 → 고뇌’ 4막 4장




[1막] 첫 가족여행을 떠나다

배우 염동헌 씨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며 찡긋 웃고 있다. 연기 생활 20년째인 그가 가난에서 벗어나 무대 밖에서도 환한 웃음을 되찾은 건 최근의 일이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배우 염동헌 씨(43)는 한참을 세어 보았다. 일십백천만십만백만…. 통장 잔액 표시란에 숫자 ‘0’이 줄줄이 찍혀 있는 게 이상했다. 카드 빚도 갚고 강원 속초에 계신 부모님께 오랜만에 목돈도 보내 드렸다. 그러고도 이렇게 돈이 남아 있다니, 내 통장 맞나?

석 달간 3만 원으로 버티던 시절이 꿈만 같았다. 7000원으로 동료 배우 40명과 한 끼를 해결하던 시절은 더 아득했다. 갑자기 속이 쓰려 왔다. 어젯밤 많이 마셨나 보다. 연극하는 후배들과 함께 고기를 굽고 소주도 마셨다. “탤런트 선배 덕에 맛난 거 먹어요.” 무심한 후배들의 인사말에 그는 뜨끔했다. ‘내가 설 곳은 무대’라며 드라마와 영화 출연 제의를 딱 잘랐던 그가 언제부터 ‘탤런트 선배’가 됐을까.

“아빠, 비행기 타려면 나가야 해요.” 다섯 살배기 아들 명훈이가 방문 너머에서 재촉한다. 맞다. 2006년 명훈이를 낳고부터다. 아니다. 2002년 결혼하고 나서다. 아내가 그 일을 하는 걸 보고 확 돌아버린 거다….

영화 몇 편에 단역으로 출연하다 2008년 MBC ‘베토벤 바이러스’에선 단역인 트럼펫 연주자로 드라마에 데뷔했다. 2009년 SBS ‘시티홀’에선 노회한 정치인 고부실로 나왔다. 조연으로 잠깐 얼굴 내밀고 회당 100만 원을 받았다. 10년간 연극 무대에 서고 받은 총출연료는 800만 원이었다.

“아빠, 출발해야 해요.” 여행가방을 집어 들고 방문을 나서려는 순간 이마가 벗겨진 사내의 모습이 발길을 붙들었다. 거울에 비친 초로의 사내를 보며 그는 20년 전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렸다. “후배에게 잡아먹히는 게 ‘운동’하고 ‘딴따라’다”라며 배우가 되겠다는 아들을 말렸던 아버지….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그는 20년 전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2막] 3개월에 3만 원 받던 신참 시절

지난해 서울 대학로를 시작으로 지방 공연도 다녔던 연극 ‘늙은 자전거’에서 염동헌 씨(왼쪽)가 시골 의사 연기를 하고 있다. 염씨는 이 연극에서 1인 6역을 맡아 열연했다. 염동헌 씨 제공

예쁘장한 여학생이 좋아 따라가 보니 연극 동아리였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연극 동아리. 예쁜 동기가 좋아서, 형 같은 선배가 좋아서 하다 보니 그는 동아리의 중심인물이 돼 있었다.

‘딴따라 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기어이 배우 하겠다고 10만 원을 타내 서울역에 내린 게 1990년 가을. 낮에는 대학로 공연들을 기웃거리고 밤에는 공원 벤치에서 잤다. ‘배우 지망생’이란 말에 극단들이 기꺼이 객석 한 자리를 내주던 시절이었다. 나중엔 근처 방송통신대 연극 동아리 방에서 잤다.

1991년 무대에 데뷔했다. 이윤택 연출가가 대표로 있는 ‘연희단거리패’에 들어가 동료 선후배 8, 9명과 한집에 살면서 아침 6시부터 다음 날 새벽 2시까지 연습했다. 배우 수업은 제대로 받았지만 극단은 가난했다. 40명 가까운 단원의 한 끼 부식비가 7000원. 키가 179cm인 그는 1년 만에 13kg이 빠져 58kg이 됐다. ‘꽁치 대가리’란 별명이 붙었다. 첫 작품 ‘한씨연대기’를 하고 3만 원을 받았다. 3개월간 연습하고 공연한 대가였다. 3년차 때는 30만 원을 받았다.

그는 1995년을 배우 인생에서 빛나던 순간 중 하나로 기억한다. 극단 ‘청우’를 창단한 뒤 첫 정기 공연 ‘종로 고양이’에서 그는 처음으로 주연인 ‘시부’ 역을 맡았다. 신문에 호평이 실렸고 관객들의 반응도 좋았다. “영화 같이 하자”는 전화가 몇 차례 걸려 왔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설 곳은 무대다.’

극단을 떠나 ‘프리랜서 배우’가 된 후로는 부르는 곳이면 울산이든 부산이든 달려가는 떠돌이 생활을 했다. 공연이 없어 공치는 날에도 매일 대학로로 출근했다. 공원 벤치에서 신문을 뒤적이다 귀가할 때도 많았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명훈 아빠, 안 나오고 뭐해요.” 아내의 목소리가 거울 속 사내에게 빠져 있던 그를 깨웠다. 아, 아내 박지은이다.

[3막] 결혼과 ‘외도’

두 살 어린 아내도 배우다. 둘은 연극을 하다 만났다. 극단 ‘가교’ 소속인 아내에게 프러포즈할 땐 처음 무대에 섰을 때만큼 떨렸다. “한 달에 100만 원은 벌어다 줄게.” 2002년 식 올리고 부모님이 얻어준 서울 노원구 중계동 15평 아파트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아내에게 매달 100만 원을 쥐여주기는 어려웠다. 그가 폭발한 건 어느 날 밤 난장판이 된 집 안을 보고서다. 좁은 거실에 인형을 수북하게 쌓아놓고 인형 눈을 붙이고 있는 아내를 보자 배우로서 자존심이고 뭐고 모든 게 와르르 무너졌다.

이 일 직후 그의 ‘외도’가 시작됐다. 영화 ‘서프라이즈’의 단역 출연 제의가 들어왔고 그는 수락했다. 출연료는 30만 원이었다. 몇몇 영화에 기억하기 힘든 단역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2006년 명훈이가 태어났지만 배우 부부가 악착같이 벌어도 한 달 벌이는 100만 원을 넘지 않았다. 모자라는 돈은 카드 빚으로 쌓였다.

2009년 드라마 ‘시티홀’ 출연은 가뭄의 단비 같았다. 2001년 연극 ‘혜화동 파출소’를 올릴 때 같이 했던 김은숙 작가가 잊지 않고 그를 불렀다. 연극배우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출연료를 받아 들고 울먹였다. ‘이제 가장 노릇은 할 수 있겠구나.’

얼굴이 알려지자 연극 무대에서도 바쁘게 불러댔다. 작품도 좋고 출연료도 제때 주는 무대에 골라 설 수 있게 됐다. 올해는 CJ E&M이 제작한 ‘키사라기 미키짱’에 출연해 회당 40만 원을 받았다. 미키짱이 끝나고는 SBS 아침드라마 ‘미쓰아줌마’에 출연하면서 배우 생활 20년 만에 최고 수입을 올렸다.

배우로 생계를 해결할 수 있게 됐으니, 업계 용어로 ‘센터에 진입’한 것이다. ‘그래, 나이보다 늙어 보이면 어때, 센터에 진입했는걸.’ 그는 거울을 향해 웃어 보인 후 방문을 나섰다. 제주도로 출발!

[4막] 제주도 푸른 바다

2박 3일간의 제주 여행은 그의 첫 가족여행이다. 신혼여행 이후로 따지면 9년 만이다. 푸른 바다를 보니 가슴이 탁 트였다. 바다 때문일까. 빚을 다 갚았기 때문일까. 빈곤의 터널을 빠져나온 덕분일까.

‘버티고 버텨 여기까지 왔나 보다.’ 그보다 앞서 가난을 벗어난 동료를 겉으론 축하하면서도 속으론 부러워하고 스스로 부끄러워한 적도 많았다. 지금 누군가는 ‘탤런트 선배’ 염동헌을 보며 그런 복잡한 심정이 될 것이다.

이미 떠난 사람들도 생각난다. 같이 연극을 시작한 이들 중 상당수가 한참 전에 연극판을 떠났다. 연극판에 뛰어들어 10년을 버티는 사람은 10명 중 1명꼴이다. 극단도 20년간 많이 사라졌다. 이름만 있지 활동이 전무한 극단이 상당수다. 그가 소속된 ‘예군’도 작품을 못 올린 게 4년 가까이 됐다. 2007년 극단 대표가 월세 보증금 500만 원을 빼 제작한 ‘성순표씨 일내겄네!’가 마지막이었다. 극장 대관료가 치솟은 요즘은 정부 지원금 없이 공연하기가 힘들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요즘 연극판으로 뛰어드는 젊은이들은 20년 전보다 무대에 설 기회가 적다. 배우로 성장하기가 더 어려워진 것이다. 배우 하겠다고 공연 없는 날 공사판에서 막일 하고, 대리운전 뛰고, 백화점 판매 도우미로 춤추는 후배들을 보면 ‘딴따라’ 생활 20년째인 그도 묻고 싶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서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하지만 그는 묻지 않는다. 답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 연극배우 46% “월평균 소득 50만원도 안돼” ▼
“배우로서의 삶엔 만족” 54%

본보가 최근 서울연극센터의 도움으로 연극배우 11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절반에 가까운 54명(46.2%)은 월평균 연극 출연료로 50만 원 미만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32명(27.4%)은 50만 원∼100만 원 미만을 받는다고 답했다. 10명 중 7명 이상이 월평균 100만 원에 못 미치는 출연료를 받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출연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배우가 66명(56.4%)으로 절반이 넘었다. 응답자 중 79명(67.5%)은 생계를 위해 연극이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방송이나 영화 등에 출연하는 배우가 24명이었고, 연기강사로 일하거나(19명), 막노동 혹은 대리운전(11명)으로 생계를 해결하는 배우가 많았다. 마트나 백화점 판매 도우미, 결혼식 축가 부르기 아르바이트, 요가 강사 등의 부업을 하는 배우도 있었다.

‘연극배우로서의 삶에 만족한다’는 응답(54.6%)이 ‘후회한다’는 응답(7.7%)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연극 무대에 서는 이유에 대해선 ‘내가 좋아서 선택한 길이니까’ ‘연극할 때가 가장 즐겁고 살아있음을 느끼니까’ ‘다른 일을 하는 모습은 상상할 수 없어서’라는 답변이 나왔다.

정부는 예술인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하고 예술인복지재단을 설립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설문에 응한 배우들은 예술인 복지를 위해 가장 필요한 사항으로 ‘최저 임금제 시행’(49.6%)을 꼽았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