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그런 점에서 3일 영결식을 한 산악인 박영석 대장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하는 지금 솔직히 자신이 없다. 박영석 원정대는 본보가 오랫동안 미디어 후원을 해왔다. 그 주무부서가 스포츠레저부다. 우리 기자들 중 여럿은 그와 호형호제를 하는 사이다. 하지만 담당이 아니었던 기자는 박 대장과 악수 몇 번 하고, 언제 소주나 한잔하자는 얘기를 나눴을 뿐이다. 체격도 작은 편인데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 게 그와의 짧은 만남에서 느낀 전부였다. 굳이 촌수를 맺자면 박 대장은 후배의 후배다. 기자의 신문사 후배의 산악계 후배다. 그런데도 서로 동갑이다. 신문사 후배가 늦게 입사한 데다 박 대장이 재수를 하는 바람에 생긴 결과다.
서로 깊은 정을 나누지 않아 가까운 지인들에 비해 비통한 마음은 덜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실종 소식은 기자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북한산조차 여태 정상엔 오르지도 못했고 몇 번 가봤을 뿐인 문외한이지만 박 대장이 세계 산악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만큼은 잘 알기 때문이다.
텐진의 등이란 표현에는 힐러리를 깎아내리려는 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힐러리가 세계인의 추앙을 받는 이유는 그가 에베레스트 초등자라는 사실보다 이후 55년간 봉사와 희생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텐진의 등은 힐러리 경의 남은 삶을 이끄는 최고의 채찍이자 등불이었다.
박 대장의 실종 소식에 큰 안타까움이 남는 게 바로 이 부분이다. 박 대장은 지난해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이어 이번 안나푸르나 남벽과 내년 로체 남벽까지 세계 3대 난벽에 코리안 루트를 뚫는 일만 끝내면 현역에서 은퇴해 산악계의 멘토로, 사회사업가로 새로운 삶을 살려고 했다. 세계 최초의 산악 그랜드슬램 달성을 통해 얻은 경험과 환희를 젊은이들과 나누고 네팔 등 산악 지역에 병원과 학교를 지을 계획이었다. “정상은 내려오고 나서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는 조지 맬러리의 말처럼 하산 후의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박 대장은 이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그가 남긴 정신과 발자취는 후배들이 고스란히 이어받을 게 분명하다. 박 대장의 실종은 후배들을 이끌 ‘텐진의 등’이 됐다. 히말라야에 남았기에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역설. 슬프지만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