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밤 서울 종로구 세종로사거리 동화면세점 앞 정류장이 도로까지 내려와 버스를 타려는 승객들로 혼잡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버스정류장은 11개 노선 222대 버스로 늘 붐비지만 승객 안전을 위한 장치는 없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13일 오후 8시 서울 종로구 세종로사거리 동화면세점 앞 버스정류장. 경기 고양시 집과 광화문 직장을 광역버스로 출퇴근하는 남승진 씨(38)는 버스를 타려고 몰려드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불만을 쏟아냈다. 승객들은 정류장에서 기다리던 버스가 다가서자 도로로 내려서 급하게 내달렸다. 버스는 지정된 정류장에 차를 세우기 어려워 보이자 먼저 와 서있던 버스를 제치고 10m 앞쪽에 정차했고 승객들은 다시 몸을 틀어 버스를 쫓아 달렸다. 줄은 설 수도 없다. 말쑥한 40대 부장급도, 20대의 멋쟁이 커리어 우먼도 우르르 앞문과 뒷문으로 몰려와 조금씩 몸을 밀쳐가며 버스에 몸을 실어야 했다.
이곳 버스정류장은 20m 남짓한 가로변인데 정차하는 노선만 11개에 버스대수는 222대에 이른다. 택시가 정차하면서 버스가 정차할 공간은 더 짧아졌고 승객들은 택시와 버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버스를 타야 했다. 몇 분 뒤에 버스가 온다는 첨단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지만 줄서기나 안전을 위한 장치는 아무것도 없었다.
화곡동에 사는 이모 씨(56)는 “택시나 포장마차만 제 자리를 찾아가도 좀 나아질 텐데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고 말했다.
명동 국민은행 앞 버스정류장도 악명이 높다. 이곳 역시 버스가 어디에 설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승객들로 붐빈다. 줄 서서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이 있을 수 없다. 버스가 도착해 앞문이 열리면 승객은 도로를 내달려 순식간에 문을 에워싼다. 경기 성남시 분당까지 한 시간 안팎을 서서 갈지도 모르기 때문에 발판에 일단 발부터 올려놓고 보거나 밀치기가 다반사다.
서울 시내에 중앙버스전용차로제가 실시되면서 행인이 많이 오가는 가로변 버스정류장의 혼잡 문제가 많이 해결되긴 했지만 버스전용차로제가 시행되고 있지 않은 도심에서는 이처럼 시민들의 불편이 계속되고 있다.
노선 수가 적어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일본 도쿄의 버스정류장에는 노선별 버스 정차 위치가 정해져 있어 승객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닐 일이 없다. 서울시는 불편을 개선하기 위해 방안을 고심 중이지만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정류장은 좁고 운행버스는 많아 퇴근할 때 시민들이 불편을 겪는 것은 사실”이라며 “강남 일부 정류장에 마련한 광역버스 정류소 대당 1곳 설치 모델을 비롯해 한줄 서기를 유도하는 방법 등 여러 해결 방안을 찾는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