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운동 앞장서온 아프리카-중동 여걸 3인 공동수상
2003년 그런 암흑 속에서 한 여성이 분연히 일어섰다.
“여성들이여,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남자들과의 잠자리를 거부하자.” 이른바 라이베리아 ‘섹스파업’의 시작이었다. 섹스파업을 호소한 라이베리아 평화운동가 리머 보위 씨(39)는 장기 집권 중이던 찰스 테일러 당시 대통령을 직접 만나 가나에서 열리는 평화회담에 참석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평화회담은 테일러 대통령의 사임과 민주선거로 이어졌다. 보위 씨의 노력으로 이뤄진 2005년 대선에서 라이베리아는 아프리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선출했다. 라이베리아에 민주화를 정착시키고 연평균 6%가 넘는 경제성장을 이끌고 있는 엘런 존슨설리프 대통령(72)이다.
▼ “성폭력-정치차별 방관말라”… 재스민혁명 지지도 ▼
○ “여성인권 탄압 방관 말자” 메시지
올해 노벨 평화상의 메시지는 매우 명료하다. 지구촌이 아프리카와 중동 일부 지역 여성들이 감내하고 있는 열악한 인권 상황을 더는 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노벨위원회는 “사회 모든 계층의 여성이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남성과 동등한 기회를 갖지 못한다면 우리는 민주주의와 세계의 지속적인 평화를 얻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노벨위원회 위원장인 토르비에른 야글란 전 노르웨이 총리는 “이번 평화상 수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아프리카와 이슬람권 여성들의 영향력 확대뿐 아니라 여성에 대한 폭력과 성폭력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아프리카 및 무슬림권에서 민주주의를 향상시키는 여성의 역할에 관심이 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성폭력 문제는 남아프리카 지역에서 특히 심각해 2002년 통계에 따르면 소녀 4명 중 1명이 16세 이전에 성폭행을 당했다. 2004년 통계에서는 에이즈에 걸린 15∼24세 아프리카 사람 중 4분의 3이 여성이었다.
조혼과 성기의 일부를 자르는 할례의식도 여전히 전통처럼 남아 있다. 유엔의 2009년 조사에 따르면 에티오피아 여성 중 25.3%가 15세 전에 결혼한다. 특히 서북부 암하라 지역의 경우 이 비율이 52.4%에 달해 세계에서 조혼 비율이 가장 높다.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등 중동 국가들은 2000년 이후 속속 여성의 투표권과 피선거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사우디는 현재까지 여성의 참정권을 허용치 않고 있다.
○ 재스민 혁명에 대한 간접적 시상
이번 노벨 평화상 수상자 후보에는 약 250명이 검토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 이집트 시민혁명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던 전 구글 간부 와엘 고님 씨, 이집트 민주화 시위를 주도한 청년단체인 ‘4·6 청년운동’, 튀니지의 유명 블로거 리나 벤 멤니 씨 등이 자주 거론됐다. 그러나 노벨위원회는 주변의 예상을 뒤엎고 카르만 씨를 수상자로 결정했다.
야글란 위원장은 “아랍의 봄 혁명을 아우르는 지도자를 찾기가 어려웠다. 특히 시위를 촉구했던 수많은 블로거 중에서 찾기란 더욱 힘들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아직 이집트 튀니지 예멘 시리아 등의 정권교체가 미완으로 남은 상태에서 만약 아랍의 봄에 단독으로 상을 수여했을 경우 불확실성과 논란의 소지가 너무 크다는 점을 고려해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각국의 여성운동은 노벨 평화상이라는 빛나는 영예를 안고 활동에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노벨 평화상 수상자를 두 명이나 배출한 ‘여성 인권의 불모지’ 아프리카가 가장 주목된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