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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자주개발률 20%’ 밀어붙이기… 가스-석유 개발 ‘삐걱’

입력 | 2011-09-27 03:00:00

기업 “해외여건 나빠 부작용 우려”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지식경제부 산하 공기업 국정감사장.

민주당 강창일 의원은 “이라크 쿠르드 지역에서 석유탐사 업무를 총괄하던 한국석유공사 쿠르드 사업팀의 배모 과장이 6월 3일 업무스트레스로 자택에서 목숨을 끊었다”고 밝혔다. 유족들에 따르면 배 과장은 평소 “쿠르드 사업은 한국에 불리한 사업인데 윗선에서 너무 성급하게 밀어붙이고 있다”며 “다음 정부에서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는 말을 수차례 했다. 강 의원은 “현 정부의 자원개발 성과에 대한 조급함과 무리한 해외사업 추진이 직원을 자살로 몰아갔다”고 비판했다.

한국이 주도한 쿠르드 프로젝트는 2008년 시작해 약 4억 달러(약 4800억 원)가 투자됐다. 현재도 탐사작업 중이지만 아직까지 경제성 있는 원유를 발견하지 못해 성과가 없다.

이명박 정부가 최대 치적으로 내세우는 해외 자원개발 성과가 연일 도마에 오르고 있다. 정부를 공격하기 위한 지나친 비판이라는 지적도 일부 있지만 정부가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한다는 데는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현 정부의 임기가 1년 남짓한 상황에서 ‘임기 내에 가스·석유의 자주개발률을 20%까지 올리겠다’는 목표를 맞추기 위해 무리한 사업 추진이 계속될 것이란 우려가 많다.

○ 무리하게 나서는 공기업

석유공사는 최근 두바이유보다 배럴당 20달러까지 싼 서부텍사스유의 광구를 매입하기 위해 미국 내의 석유회사와 접촉했지만 결국 거래가 깨졌다. 미국 측 회사가 시세보다 지나치게 놓은 가격을 석유공사 측에 요구했기 때문이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정부 계획에 따라 내년 말까지 자주개발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석유를 생산 중인 광구를 매입해야 하는데 가격을 높게 부르는 경우가 많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석유업계의 전문가들은 “국내 에너지 공기업들이 자주개발률 달성에만 급급해하면서 국제 석유시장에서 ‘한국 기업은 거래하기 쉽다’는 인식이 퍼졌다”며 우려하고 있다. 이에 앞서 석유공사가 2009년 12월 캐나다 캘거리에 본사를 둔 석유회사인 하베스트사를 인수하자 현지 언론들은 “What were the koreans thinking?(도대체 코리안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란 기사를 쏟아냈다. 석유공사가 47%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주면서까지 왜 부실덩어리 회사를 인수했는지 모르겠다는 지적이었다. 석유개발 사업 경험이 거의 전무한 한국가스공사 역시 지난해 이라크의 광구개발 사업에 직접 뛰어들어 비판을 받았다.

○ 한 발 빼는 국내 민간사

에너지 공기업의 적극적인 해외 자원개발 추진과 달리 민간 기업들은 한 발 뒤로 물러나는 분위기다. 국제 원유가격이 리비아 사태 등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민주화 움직임으로 배럴당 100달러 이상 유지되면서 고평가 되었다는 인식 때문이다. 현재는 석유 가격이 수요보다 높은 만큼 광구를 매입할 때가 아니라 적절한 가격에 넘겨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SK이노베이션은 올 7월에 브라질 해상유전 광구 세 곳을 덴마크 머스크오일에 매각했다. 최기련 아주대 교수(에너지학)는 “해외유전 개발에 성공해서 가격이 높을 때 매각해 적절한 차익을 남긴 사례”라고 설명했다.

현재 석유를 포함한 국제 에너지 시장가격이 점점 불투명해지고 있다는 점도 목표 수치를 정해놓고 석유 수급에 나섰다가 손해를 볼 수 있는 요인이다. 이문배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안 분석 보고서에서 “석유를 소비하고 공급량을 늘리는 상당수 국가가 석유 수급의 정확한 데이터를 내놓지 않고 있어 향후 가격을 예측하는 게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밝혔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 자주개발률 ::

공기업 또는 민간기업이 투자해 확보한 원유·가스 생산량을 전체 원유·가스 도입량으로 나눈 비율로 한 국가가 얼마나 안정적인 자원을 확보했느냐를 알려주는 지표다. 6월 말 현재 우리나라의 가스·석유의 자주개발률은 14%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