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반의 선율로 연평의 아픔을 어루만지다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가 17일 서해 바다를 굽어보는 연평도 조기역사박물관 앞 야외에서 연주하고 있다. 이 ‘섬마을 콘서트’는 연평도에서 처음 열린 음악회로 600여 명이 객석을 메웠다. MBC 제공
연주 전에 만난 백 씨는 북한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바다에는 남북을 가르는 선이 없네요. 이렇게 아름다운 땅에 어떻게 (포탄을)….”
연평도는 지난해 11월 북한의 포격으로 인한 상흔이 여전하다. 복구공사에 사용할 목재를 실은 트럭과 중장비가 해변도로를 수시로 오갔다. 포격 때 녹아내린 오토바이가 아직 뒷골목을 지키고 있다. 한 주민은 “그때 일을 기억하면 여기서 못 산다. 망각의 힘으로 버틴다”고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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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회 1시간 전부터 등에 갓난아이를 업은 할머니, 과자봉지를 손에 든 초등학생들, 앞치마를 두른 아주머니와 슬리퍼에 트레이닝복 차림인 아저씨…. 약 600명이 이곳을 찾았다. 오후 6시 반 하늘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콘서트가 시작됐다. 연평도에서는 처음으로 열린 음악회다.
백 씨는 말 없이 피아노 앞에 앉았다. 쇼팽의 ‘뱃노래’와 리스트의 ‘물 위를 걷는 파올라의 성 프랑수아’, 드뷔시의 ‘기쁨의 섬’,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 등 물을 연상시키는 음악들이 출렁거리듯 귓가를 적셨다. 바람소리도 음악과 하나가 됐다. ‘월광’의 마지막 화음과 함께 큰 박수와 “앙코르” 소리가 쏟아졌다. 백 씨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리스트의 ‘잊혀진 왈츠’로 환호에 답했다.
가족 다섯 명이 다같이 연주회에 왔다는 연평도 주민 신순자 씨(58)는 “우리를 위로해 주려고 먼 곳까지 와 줘서 정말 고맙다. 음악이 이렇게 좋은지 몰랐다”고 말했다. 박은혜 양(13·연평중 1)은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수줍게 웃었다. 재미변호사 이종연 씨(83·경기 용인시 기흥구)는 “고향 황해도가 그리워 이곳을 찾았다가 콘서트에 참석했다. 북한이 포를 쏘아올린 바다를 바라보며 백 씨가 연주하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백 씨는 “음악을 통한 인간과 인간의 만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연주 중 언뜻언뜻 본 관객들의 얼굴이 점점 더 환하게 빛났다”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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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섬마을 콘서트는 21일 전북 부안군 위도 위도해수욕장, 24일 경남 통영시 욕지도 도동항에서 열린다.
연평도=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