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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음식이야기]아욱국

입력 | 2011-09-16 03:00:00

조강지처 쫓아내고 먹는 가을 보양식… 전어와 ‘쌍벽’




속담으로만 보면 전어가 아무리 맛있어도 가을 아욱국에는 견줄 바가 못 된다. “가을 아욱국은 문 걸고 먹는다”는데 이 정도면 전어와 별반 다를 것도 없지만 “조강지처도 쫓아내고 먹는다”는 옛말에 이르면 전어가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소심하게 며느리 친정 보낸 사이에 문 닫아 걸고 몰래 먹는 전어와 무슨 배짱인지 조강지처마저 내치고 먹는 아욱국은 처음부터 비교 대상이 아니다. 아욱국은 그래서 아무한테나 먹이는 음식이 아니었다. “가을 아욱국은 막내 사위에게만 준다”는 속담도 있으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딸을 데려간 사위에게만 특별히 제공하는 음식이었다.

가을 아욱이 얼마나 좋은지 관련된 속담이 계속 이어진다. “아욱으로 국 끓여 삼 년을 먹으면 외짝 문으로는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다. 살이 포동포동 쪄서 좁은 문으로는 못 들어간다는 말이니 요즘 같은 세상에서야 기겁할 일이지만 그만큼 아욱의 풍부한 영양을 강조한 말이다. 가을에 된장 풀고 아욱 넣어 맛있게 끓인 아욱국에 밥 말아 먹으면 그 자체가 보약이 될 것 같다.

아욱은 영양만 풍부한 것이 아니다. 아욱의 별명은 파루초(破樓草)다. 깨뜨릴 파(破), 다락 루(樓), 풀 초(草)이니 집을 허물고 심는 풀이라는 뜻이다. 별명의 유래가 1907년 7월 4일자 대한매일신문에 보인다.

“어느 집에서 봄에 나물을 심는데 마님이 여종에게 이르되 다른 나물은 심지 말고 아욱만 심으라며 서방님이 좋아하시는 채소라고 했다. 여종이 아욱 심을 밭이 없다고 하니 마님의 말이 그럼 누각을 허물고 그 터에다 심으라 하였다고 해서 아욱의 이름을 파루초라고 한다.”

아욱은 양기를 보충하는 나물인데 마나님이 직접 서방님이 좋아한다며 누각을 허물고 그 자리에 아욱을 심으라고 한 것을 보면 효과가 좋았던 모양이다.

아욱이 정력에 좋다는 말은 민간에서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1313년 원나라 때 왕정이 펴낸 ‘농서(農書)’에도 아욱은 양기를 북돋는 채소라고 나온다. 또 모든 채소 중에서 으뜸이라고 했으니 마님이 앞장서 집을 허물고 아욱을 심을 만도 했다. 문제는 마님이 솔선수범 심은 파루초인 아욱이 다 자라 가을에 국을 끓일 때가 되면 서방님이 조강지처마저 내쫓고 혼자 먹겠다고 했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이런 아욱이지만 청렴한 공무원은 아욱을 함부로 키워 먹으면 안 된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순리열전(循吏列傳)에 실린 이야기다.

춘추시대 노나라 재상으로 공의휴(公儀休)라는 사람이 있었다. 법을 준수하고 원칙을 지키며 일을 처리할 때는 조금도 편법을 쓰는 일이 없었다. 국록을 먹는 관리가 이익 챙기는 것을 금지하니 관리의 품행이 깨끗해져 백성의 칭송이 높았다.

대신 집안 살림은 넉넉하지 못해서 부인이 반찬값이라도 줄이겠다며 텃밭에 아욱을 심고 집에서 비단을 짰다. 이 모습을 본 공의휴가 “국록을 받는 관리가 집에서 아욱을 직접 키우고 비단을 짜서 옷을 해 입으면 농민들은 어디에다 아욱과 비단을 팔아 생계를 이어갈 것인가”라며 아욱을 뽑고 비단을 내다 버렸다. 발규거직(拔葵去織)이라는 고사다. 나랏일 하는 사람이 올가을 아욱국을 먹으며 되새겨 보았으면 싶은 말이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