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으로의 초대 심만기, 그림 제공 포털아트
대기업 중견간부인 형은 올해도 추석에 고향으로 오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형수도 몸이 안 좋다며 못 온다는 연락을 해 올해도 고향에는 조 과장 가족과 노모만 모여 차례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진종일 축제 같던 어린 시절의 추석 풍경이 되살아나자 왠지 모르게 가슴이 막막해졌습니다. 모든 게 겉치레로 변하고 명절조차 의무적인 시간 때우기로 전락한 것 같아 마음이 이를 데 없이 허전했습니다.
운전대를 잡고 앉아 있던 어느 순간, 조 과장은 자신이 우주 미아가 된 것 같은 고독감에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하지만 세 명의 가족 중 어느 누구도 그와 눈이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끊은 담배를 다시 피우고 싶은 강렬한 끽연 욕구를 느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명절을 보내러 가는 길이 왜 이렇게 외로울까.
추석 명절에 숨겨진 정신적 가치는 수직과 수평의 합일, 나눔을 통한 공동체의 동질성 확인입니다.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결실의 계절, 풍년을 기뻐하며 노래하고 춤추던 의식(儀式) 속에 담긴 가장 큰 정신성은 자연과 조상에 대한 감사의 마음입니다. 땅의 백성이 하늘에 감사하는 날이니 하늘과 땅이 만나는 날이요 조상과 후손이 만나는 날입니다. 수직과 수평이 하나 되는 날이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같은 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21세기, 디지털 노마드의 세계에서 추석은 명절로서의 광휘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기로 무장하고 이어폰을 꽂은 채 이웃과 단절된 삶을 추구하는 세대에게 추석의 정신성을 접목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노마드의 세계에도 수직과 수평의 합일, 나눔을 통한 공동체의 동질성 확인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참다운 인간 세상, 사람이 살 만한 세상을 추구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사분오열된 세상을 돌아보는 한가위, 모든 것이 풍요롭게 어우러지는 ‘하나’의 의미를 되새기는 추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박상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