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조용미 시인. 문학과지성사 제공
“우연히 유리병을 발견했고 뚜껑을 여는 순간 목이 메었죠. 한참을 멍하니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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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살면서 시적 정황은 수도 없이 많지만 마늘꿀절임 같은 시적 순간은 쉰 번에 한 번 맞기도 어렵다”고 조용미 시인은 말한다. 4년 전 가을밤의 마늘꿀절임은 사라졌지만 시인은 강원 원주시 토지문화관에 머물며 새로운 시적 순간을 만나려 노력하고 있다.
“밤이면 풀벌레 소리가 들려요. 3년 전 가을도 여기서 보냈는데, 이곳의 가을이 참 마음에 드네요.”
시 ‘가을밤’은 지난달 출간된 시집 ‘기억의 행성’(문학과지성사)에 수록했다. 그의 다섯 번째 시집이다. 1990년에 등단한 조 시인은 주변에서 흔히 스치고 지나가는 색깔과 소리에 대한 진지한 탐색과 사유를 확장해 인간 존재의 심연을 드러내는 서정시를 선보이고 있다.
손택수 시인은 추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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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 시인은 서늘한 서정시의 매력에 대해 언급했다. “서정시라고 하면 대개 따뜻한 서정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은데 조용미의 시는 서늘한 서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덕분에 흔치 않은 시적 매력을 경험할 수 있다.” 장석주 시인은 “조용미 시인은 이미 ‘1급 시인’”이라고 짧게 평했다.
이건청 시인은 한영옥 시인의 시집 ‘다시 하얗게’, 이창수 시인의 ‘귓속에서 운다’를 추천했다. 한 시인에 대해서는 “일상적 세계와 사물을 보는 안목이 섬세하고 세밀하다”고, 이 시인에 대해서는 “시어에 대한 절제의 미학이 탁월하다”고 평했다.
조 시인은 원주 토지문화관에서 보낸 시작(詩作) 메모에 “몸이 차가운 사람에게 좋다는 마늘꿀절임을 담가두고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느 날 유리병을 발견하고 보니 담근 날짜와 그날로부터 두 달 후에 먹어야 한다는 메모가 붙어 있었다. 두 해가 훌쩍 지나 있었다. 마늘과 꿀은 스미고 스며들어 서로 까맣게 변해 있었다”라고 적었다. “그걸 들여다보며 잠시 멍하니 서 있었던가. 시적 순간이란 문득 그렇게 찾아온다. 목이 메고, 마음이 사무치는 소소한 깨달음과 슬픔의 순간에.”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