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인물 표현엔 가면이 딱 가로 23m 그림 직접 그렸죠”
판소리 오페라 ‘수궁가’의 연출가인 아힘 프라이어 씨가 직접 만든 가면을 들어보이고 있다.손에 들고 있는 게 주인공 토끼 가면이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국립극장이 8∼11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초연하는 판소리 오페라 ‘수궁가’는 독일 현대연극의 선구자인 브레히트의 제자이자 오페라 연출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아힘 프라이어 씨(77)가 연출을 맡아 어떤 무대를 선보일지 기대된다. 특히 유영대 감독의 말처럼 무대 미술을 주목할 만하다.
프라이어 씨는 5년마다 열리는 독일의 유명 현대 미술제 ‘카셀 도쿠멘타’에 2회 연속 초청됐다. 세계 각지에서 숱하게 작품 전시회를 연 추상표현주의 화가로도 유명하다. 그런 이력답게 이번 작품의 무대 미술, 의상 등 모든 부분에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지난달 18일 찾은 국립극장의 그의 작업실은 미니어처 무대, 책상 위에 어지럽게 놓여 있는 습작 그림 등으로 아틀리에를 연상시켰다.
프라이어 씨는 평면의 가면을 사용하는 데 대해 “화자(도창)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공적인 인물임을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평면인 것은 관객에게 정면으로 이야기한다는 느낌을 주려는 의도에서다. 토끼, 거북이, 호랑이, 원숭이, 물고기 등을 추상화한 가면 그림은 검은색, 흰색, 빨간색의 3가지 색만 사용해 절제된 전체 무대 분위기에 녹아들게 했다.
도창을 맡은 안숙선 씨는 가면을 쓰지 않은 채 길이가 3m나 되는 대형 남색 치마를 입고 등장한다. 치마 속엔 200kg의 하중을 견디고 4.5m 높이까지 사람을 들어올릴 수 있는 리프트가 들어간다. 프라이어 씨가 직접 설계했고 2000만 원을 들여 철제로 제작했다. 극중 모든 등장인물은 이 치마 속을 통해 무대로 입장하고 퇴장한다.
커튼 대신 사용하는 가로 6m, 세로 4m 크기의 가림막 두 개와 가로 23m, 세로 1.2m 크기의 무대 뒤 배경판의 그림도 프라이어 씨가 직접 그렸다. 가림막의 그림은 고전 판소리에서 수묵화나 서예화의 병풍 속 산수화(山水畵)를 흑백의 어지러운 선으로 표현했다. 배경판은 검은 바탕에 물결 모양의 흰색 선을 그려 넣어 바다를 나타냈다.
유 예술감독은 “예전에 프라이어 씨가 연출한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보면서 무대와 의상, 조명 모두 하나가 된 작품의 완결성에 감탄했다. 이번 무대에서도 그런 완결성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2만∼10만 원. 02-2280-4115,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