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만 보고 가면 무슨 재미? 대구 ‘골목길 식탐여행’
‘대구의 명동’ 동성로(한일극장 앞)에 ‘미녀새’ 옐레나 이신바예바(러시아 장대높이뛰기선수)가 나타났다. 이 멋진 도약 사진은 내일 개막될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상징하는 홍보물이다. 이 대회 보러 찾은 대구. 게서 화끈 얼큰 ‘대찬맛’의 ‘대구10미’ 식탐골목을 그냥 지나쳤다면 글쎄, 그 여행은 무효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대구=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대구엔 먹을 게 없다.” 흔히들 이렇게 말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니었다. 그걸 확인한 게 이번 취재의 소득이다. 대구에서 맛보는 특미. 그걸 뭉뚱그려 ‘대구10미(十味)’라고 부른다. 따로국밥, 막창구이, 생고기, 동인동 찜갈비, 논메기 매운탕, 복어불고기, 누른국수, 무침회, 볶음우동, 납작만두다. 대구시는 이걸 ‘대찬맛’이라고 이름 붙인 뒤 홈페이지(www.daegufood.go.kr)까지 두고 홍보한다. 그런데 그뿐이 아니다. 신천떡볶이, 곱창전골, 닭똥집튀김도 대구를 대표하는 맛이다.
국밥의 대구버전 ‘따로국밥’
대구10미의 두 번째는 막창구이, 세 번째는 뭉태기다. 네 번째는 동인동 찜갈비, 다섯 번째는 다사 논메기 매운탕 마을(달성군)의 논메기 매운탕이다. 콩나물과 복어를 고추기름 넣고 맵게 볶아 먹는 ‘복어불고기’, 콩가루 섞은 밀가루반죽으로 얇게 면을 뽑아 끓여내는 ‘누른국수’, 데친 오징어와 소라 등을 초고추장에 무쳐내는 ‘무침회’가 여섯 번째부터 여덟 번째를 차지한다. 나머지 두 개는 ‘볶음우동’과 ‘납작만두’. 역시 타지에서는 맛볼 수 없는 대구특미다.
동성로에서도 가장 화려한 대구백화점. 그 맞은편의 ‘샛골목’에 들어섰다. 35년째 한자리에서 ‘볶음우동’을 내고 있는 원조식당 ‘중화반점’을 찾아서다. 주인은 화교. 큰 접시에 두 사람이 먹어도 좋을 만큼 ‘볶음우동’이 담겨 나왔다. 겉으로 보나 맛으로 보나 분명 짬뽕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국물이 바닥에 살짝 깔릴 정도로 적다는 것뿐. 매운 양념에 해산물을 국수와 함께 볶아 내는데 둘이서 탕수육과 함께 시켜 나눠 먹는 게 요령이다.
납작만두는 대구 곳곳에서 맛볼 수 있는 향토음식이다. 실제 먹어보니 만두라는 이름을 붙이기 민망할 만큼 속이 부실했다. 당면 부스러기 몇 가닥과 잘게 썬 부추 몇 조각뿐이다. 얇은 피를 반 접어 부친 지지미(부침개)라는 게 정확한 설명이다. 먹고살기 힘들던 6·25전쟁 당시 생겼다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식탐 자극하는 대구의 맛집골목
(왼쪽 위부터)따로국밥, 막창구이, 뭉태기, 찜갈비, 복어불고기, 누른국수, 무침회, 볶음우동, 납작만두
다양하지만 매운맛 공통점
논메기 매운탕
그런데 거기엔 공통점이 있었다. ‘얼큰 화끈한 매운맛’이다. 찜갈비, 매운탕, 복어불고기, 무침회, 볶음우동을 보라. 모두가 맵다. 곱창구이도 고춧가루 뿌려 굽는데 그런 곳은 전국에서 대구뿐이다. 납작만두도 먹기 전 고춧가루를 듬뿍 친다. 따로국밥도 그 얼큰함이 매력. 그 맛 역시 손님상에 내기 전 한 술씩 떠 넣는 매운 고추기름에서 비롯된다.
맛은 토속에 근거하며 토속은 그 지방 자연의 산물이다. 화끈 얼큰한 대구의 맛. 그것은 분지를 이뤄 한겨울엔 춥고 한여름엔 무더운 대구의 지형과 기후, 거기서 한 발짝도 떨어져 있지 않다. 그러니 이 여름 막바지,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보러 대구를 찾는다면 당연히 대구10미와 맛집골목을 배회할 일이다. 그러다 보면 짧고도 짧은 대구 체류의 아쉬움을 화끈 얼큰한 대구10미의 매운맛으로 달랠 수 있지 않을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