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2008년 이후 지난해까지 MB 정부가 폐지한 규제는 매년 100건을 넘었다. 2008년부터 올 5월까지 정부가 찾아낸 실생활이나 국내 산업 관련 숨은 규제도 7000여 건에 이른다. 노무현 정부 5년간 규제가 300건가량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큰 변화다.
하지만 정부의 규제개혁 드라이브는 올 들어 부쩍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친(親)서민, 동반성장 정책이 국정운영 전면에 등장하면서 각종 규제개혁 정책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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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3월 24일 한 강연회에서 보건과 의료, 방송·통신, 교육, 에너지 산업 등 서민생활과 밀접한 분야의 각종 진입규제를 완화하는 3단계 경쟁제한적 진입규제 개선 방안을 5월에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진입규제 개선 방안은 교육 의료 문화 관광 등 각 분야의 진입규제를 풀어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것으로 2009년부터 공정위가 대대적으로 추진해 왔던 규제개혁 정책이다.
하지만 3단계 진입규제 개선 방안은 세 차례나 연기되면서 당초 계획보다 3개월 늦은 이달 19일에서야 발표됐다. 규제 개혁의 타깃이 된 부처들의 반발이 끊이지 않으면서 당초 검토 대상이던 50여 개 과제 가운데 19개만 포함됐다.
이 과정에서 생활폐기물 수집·운반업 진입규제 완화는 영세사업자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TV홈쇼핑 시장 개방은 ‘과소비를 조장한다’는 방송통신위원회의 반대로 빠졌다.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굵직한 과제 상당수가 제외된 셈이다.
개선 과제에 포함된 규제개혁 방안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음식문화거리’의 음식점들이 점포 앞거리에 식탁과 의자를 놓고 손님을 받도록 하는 음식점 옥외영업 허용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부는 2년 전 관광특구 내 음식점 옥외영업을 허용했지만 대상 음식점 3300여 곳 가운데 실제로 혜택을 본 영업점은 올해 4월까지 40곳 정도였다. 건축법에서 음식점의 공터 이용을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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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서민 관련 없는 행정규제 늘어
규제개혁 의지가 퇴색되면서 새 규제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올 들어 22일까지 신설된 규제는 54건으로 지난해 전체 신설 규제 수(56건)에 육박한다. 2009년에는 273건의 규제가 신설됐지만 자본시장법 도입으로 늘어난 규제 221건을 제외하면 새로 도입된 규제는 52건에 불과했다. 반면 22일까지 폐지된 각 부처의 규제는 48건으로 지난해 119건, 2009년 415건에 크게 못 미친다. 예정돼 있던 굵직한 규제 완화 및 개혁 법안이 부처 간 갈등과 국회의 반대로 표류하면서 폐지 규제 수가 크게 감소한 것. 예를 들어 일반 지주회사의 금융사 보유를 허용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2년 넘게 방치돼 있다.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위해 추진한 투자개방형(영리) 의료법인 도입도 3년째 허송세월하고 있다.
특히 정부에 인가, 등록 의무를 부과하는 행정규제가 늘고 있어 문제라는 목소리가 높다. 올 들어 가격 및 거래 규제 등 경제적 규제는 15건이 늘고 34건이 폐지된 반면 행정규제는 30건이 신설되고 8건이 폐지됐을 뿐이다. 정부는 친서민, 동반성장 정책으로 불가피하게 규제가 늘어났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새로 도입된 행정규제 중 친서민, 동반성장 관련 규제는 전통시장 인근에 대형마트 신설을 제한하는 내용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등 4건에 불과하다. 나머지 신설 행정규제들은 친환경유기농자재 제품공시 규정과 문화재 수리기술자 재교육 규정 등 시장 자율보다는 정부의 감독과 영향력 확대와 관련된 것이다. 김주찬 광운대 행정학과 교수는 “규제는 결국 정부의 힘”이라며 “현 정부가 반환점을 돌면서 집권 초기 작은 정부를 추구하던 데서 정부 개입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