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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하태원]강정마을 시위대의 거짓 평화론

입력 | 2011-08-22 03:00:00


하태원 논설위원

강한 태풍이 불던 날 해군 해상초계기 P-3C에 몸을 실었다. 17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을 이륙한 P-3C는 비바람을 동반한 폭풍우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구름과 안갯속을 뚫고 군사작전 한계선에 위치한 이어도를 찾았다. 심한 기체 요동으로 손에 들고 있던 물컵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고 안전벨트를 단단히 맨 몸이 튕겨 나갈 듯했다. 수심 4.6m 아래에 잠겨 있는 이어도를 가까이 보기 위해 수면 위 70m까지 강하했지만 ‘신비의 섬’은 바닷속에서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종합해양과학기지의 철골 구조물만 세찬 파도와 싸우고 있었다. 파도 사이로 혹시 보일까 대여섯 차례 순회비행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어도 상공을 선회하고 제주공항에 착륙한 뒤 버스를 갈아타고 서귀포시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현장을 찾았다. ‘해군 ×자식들’을 비롯해 자극적인 구호가 적힌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안내를 맡은 이은국 제주기지이전사업단장(대령)은 “단단히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무장은 안 했지만 그래도 제복을 입은 해군 9명과 동행했다는 안도감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호루라기 소리에 일사불란하게 모인 30여 명의 해군기지 반대 시위대와 일부 주민은 “사업 용지를 확인하러 왔다”는 해군 관계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욕을 퍼부으며 거칠게 군인들을 밀어냈다. 정강이를 걷어차는 소리도 들렸다. 그사이 시위대 수는 점점 늘었고 군인들은 저항도 제대로 못해 보고 퇴각했다.

마을 어귀까지 따라 나온 주민이 어느새 도망치듯 빠져나오는 기자 등 뒤에 바싹 다가왔다. 지난해 생명포기 각서를 쓰고 보름간 아프가니스탄 종군취재를 할 때나 땅이 종잇장처럼 쩍쩍 갈라진 칠레 대지진 현장을 찾았을 때도 못 느꼈던 오싹함이 느껴졌다. 군중 속 누군가가 얼굴을 숨긴 채 가할지 모를 테러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집단적인 광기(狂氣)에서 이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칭 시민운동가들이 주민을 꼬드겨 해군기지 건설을 막는 것도 모자라 제복 입은 군인들을 매질하는 이곳에선 대한민국의 공권력이 작동하지 않았다. 상당수는 전국 어느 시위현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이른바 ‘시위꾼’이라고 경찰은 전했다. 얼토당토않은 외국인들까지 합세해 구럼비 바위에서 반(反)국가적 시위가 벌어지는 동안 해군기지는 공사가 계속 미뤄지고 있다. 전액 국비로 대형 유람선이 정박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기로 했고 군 시설의 상당 부분을 주민편의시설로 개방하겠다고 해도 기지건설 계획 전면 백지화만 주장하고 있다.

해군기지 반대파는 이곳이 미군의 전초기지가 될 것이며 중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중국은 이어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려는 야욕을 숨기지 않고 있다. 중국의 관공선은 2007년 3회, 2008년 2회 출현하다 2009년에는 9회, 2010년에는 6회 출현했다. 올해 들어선 7월까지 벌써 11번이나 출몰했다.

강정마을에서 악다구니를 쓰는 거짓평화론자들에게 꼭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강정마을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전쟁역사평화박물관을 세운 이영근 관장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주둔했던 지하요새를 자기 돈 들여 혼자 곡괭이질 삽질 해 가며 복원한 제주도 토박이다. 그는 “힘이 없는 평화는 그저 신기루”라고 강조했다. 힘이 없어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여러 차례 우리의 산하를 갈기갈기 찢긴 역사의 아픔을 박물관에 가면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제주 강정마을에서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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