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진 사회부 차장, 한식·중식·양식 조리사
뜬금없이 개인 경험을 꺼낸 이유는 요즘 강하게 불고 있는 ‘한식 세계화’ 바람이 지지부진해진 데 따른 우려 때문이다. 이 말이 등장한 지는 벌써 3년이나 됐다. 2009년 5월 한식세계화추진단이 생긴 뒤 대통령 부인인 김윤옥 여사가 명예회장까지 맡으면서 각 정부 부처가 나서 한식을 알리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분위기만 보면 세계 어디에서도 비빔밥, 불고기, 잡채를 맛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한식은 세계 속으로 파고들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이다. 각 부처가 발표한 세계화 추진계획은 어느새 사문화(死文化)돼 가는 분위기다. 심지어는 손에 쥐여준 예산도 쓰지 못했다. 추진단 출범 원년 100억 원이었던 사업비는 지난해 241억 원, 올해 311억 원으로 늘었지만 올해는 20%밖에 집행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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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친분 있는 식품 및 조리 관련 대학교수들은 “해당 부처가 청사진만 보여주고, 가능성만 제시할 뿐 철학도 없고 실천도 없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들은 중장기 대책도 중요하지만 당장 효과를 볼 수 있는 분야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50억 원이나 들여 외국에 정부 직영의 한식당을 개업할 바엔 이미 영업 중인 한식당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꽃을 피우게 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국내 농수산물을 해외로 공수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방안도 필요하다. 해외 유명인사들이 한식을 만날 수 있는 공관에 실력 있는 조리사를 좋은 대우를 해 내보내는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국 음식을 세계화하는 데 성공한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일본 중국 태국의 성공 사례를 면밀히 검토해 무얼 배울지도 고민해 봐야 한다.
한식 세계화는 한식재단 홈페이지에 있는 문구처럼 ‘대표적 민간외교 아이템이자, 관련 산업을 동반 성장시키는 잠재력’이다.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에 이어 한국을 최고의 문화국가로 홍보할 수 있는 전략 아이템이기도 하다. 언제까지 해외 곳곳에 자리 잡은 일식당과 중식당을 바라보며 부러워할 수는 없다. 이미 세계 곳곳에는 한국의 고추장 맛에 반한 외국인이 많지 않은가.
이기진 사회부 차장 doyoce@donga.com
한식·중식·양식 조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