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사취소訴 日변호인단 방한…"야스쿠니 실체는 전쟁 수행기관"
"일본 제국주의의 아시아 지배, 특히 조선 침략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으려는 자세가 이번 판결의 가장 큰 문제점입니다. 침략의 역사에서 야스쿠니 신사가 담당했던 역할을 빠뜨리고 있는 겁니다."
지난달 21일 일본 도쿄지방재판소. 살아 있는 자신의 이름, 혹은 가족의 이름을 야스쿠니(靖國) 신사 명부와 영새부에서 빼려고 수년간 소송을 벌여 온 한국인 10명에게 원고 패소라는 일본 법원의 답이 돌아왔다.
선고 결과에 분노한 것은 원고들을 대리해 온 일본인 변호인단도 마찬가지였다.
"변호인단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일본인으로서 원고들에게 이런 판결을 알려야 한다는 사실이 굉장히 괴로웠습니다."(아사노 후미오 변호사)
7일 만난 이보리 아키라(42)ㆍ이와타 히토시(42)ㆍ아사노 후미오(39) 변호사와 일본 현지 단체 `노합사'(NO 合祀)의 야마모토 나오요시(45) 사무국장은 "용서할 수 없는 판결"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들은 야스쿠니 신사 합사 문제가 일왕제와 관련이 있다며 일왕제나 식민지 문제에 대한 사법부의 역사의식이 전혀 없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번 소송은 한국인 합사자나 유족이 야스쿠니 신사를 상대로 낸 첫 합사취소소송이다. 이전까지의 소송은 일본 정부를 피고로 이뤄졌다.
민간 종교법인인 야스쿠니 신사를 피고에 추가할지에 대해 변호인단 안에서도 논란이 있었지만, "종교법인의 옷을 입었을 뿐 사실상 전쟁을 수행한 국가기관이라는 야스쿠니의 실체를 일본 사회에 폭로하고 싶었다"고 이들은 설명했다.
이들은 "이번 판결이 일본의 우경화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야마모토 사무국장은 "일본은 근대화 이후 자원이 없다는 이유로 간단히 다른 나라를 침략, 지배하며 살아왔다"며 "지배층이 우경화 풍조에 자신들의 바람을 투영하는 흐름을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변호인단에 참여하게 된 것도 과거사나 전후보상 분야에 대한 이런 공통된 문제의식 덕분이었다.
전직 공무원인 이와타씨는 "변호사 공부 중 다큐멘터리 '안녕 사요나라'를 보고 야스쿠니의 한국인 합사 문제를 알게 됐다"며 "'이걸 내버려두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변호사가 되면 꼭 야스쿠니 소송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회고했다.
지난 3일 항소장을 제출, 도쿄고등재판소에서 법정 투쟁을 재개하게 된 이들은 "원고들이 겪는 정신적인 피해를 알리고 재판부와 역사의식을 공유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제가 이번 소송 과정에서 아버지가 됐습니다. 유족인 원고 중에는 사실 (합사된) 아버지를 기억하고 계신 분이 별로 없어요. 한두 살 때 징집을 당해서 돌아가신 거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소송까지 하는 원고들을 보며 '이정도로 나를 생각해 주는 자식이 있다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보리 변호사)
디지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