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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500만 원 판타지

입력 | 2011-07-30 03:00:00


알타이연작6, 이인

요즘 ‘20년 동안 매달 500만 원씩 받을 수 있다면…’이라는 가정하에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새로 나온 연금복권의 인기가 폭발적이라 시중에서 사기도 힘들다는 얘기와 함께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매달 200만 원은 저축하고 300만 원으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사람, 회사 그만두고 여행 작가가 되고 싶다는 사람, 아내와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사람,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싶다는 사람 등등, 저마다 500만 원 한도 내에서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펴며 각박하고 버거운 현실을 잠시 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말미에 대부분은 ‘내 팔자에 무슨 그런 복이…’라며 자조적으로 글을 맺곤 합니다.

상상하는 동안 복권은 불가능의 세계를 해체합니다. 꿈꾸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지금의 나는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보상받아 남부러울 게 없는 존재, 남들이 한껏 부러워할 만한 존재로 순간 상승합니다. 마음에 맺혔던 모든 아픔, 기억에 각인되었던 모든 슬픔이 스러져 비로소 성취한 인간의 기쁨을 만끽합니다. 그래서 CF는 복권의 공익성을 권법(拳法)에 비유합니다. 취권, 학권, 태극권, 당랑권은 자신을 위해 쓰지만 복권은 세상의 많은 사람을 위해 쓰인다는 것.

상상이 현실로 변하는 걸 경험하는 사람은 하늘의 별을 따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일확천금의 판타지는 오직 복권을 통해서만 가능하니 설령 그것이 돈을 통한 꿈의 실현이라고 해도 힘없고 돈 없는 사람은 그것을 물리치기 힘듭니다. 그래서 버스정류장에서 주변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다가 로또를 사기도 하고 회사에서 눈치 봐가며 인터넷으로 연금복권을 구매하기도 합니다.

40대나 50대가 된 이 땅의 가장들은 특히 복권에 나약합니다. 회사에서도 치이고 가정에서도 무시당하다 보면 복권에 대한 꿈이 눈덩이처럼 부풀어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용돈의 일부를 따로 떼어 고정적으로 복권을 사는 사람도 적잖습니다. 술 마시고 헤어질 때 동료들과 복권을 사서 나누는 회사원들도 있습니다. 어느 누구건 당첨되면 서로 돈을 나누고 의리를 지키기로 약속하며 그들은 지갑에 인생역전과 인생대박의 꿈을 넣고 취한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갑니다.

복권이 없어서 못 판다는 얘기는 이 땅의 현실을 아프게 돌아보게 합니다. 매달 500만 원씩 20년 동안 연금식으로 받는 상상을 하며 현실을 망각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생산성을 등한시하고 망상으로 병들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일한 만큼 얻을 수 없는 세상, 뿌린 대로 거둘 수 없는 세상에서 복권은 종교를 능가하는 구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당첨되면 그만이니까.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서민이 사용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권법은 오직 복권뿐입니다. 그래서 복권이 날개 돋친 듯 팔린다지만, 그래서 공익사업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지만 그것이야말로 외화내빈(外華內貧)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같아 마음이 불편합니다. 복권 많이 팔리는 사회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복권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고 복권이 원래의 자리로 조용히 복권(復權)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박상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