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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프리즘/허승호]집요하게 잘못 가는 MB물가정책

입력 | 2011-07-28 03:00:00


허승호 편집국 부국장

이명박 정부가 직전 참여정부보다 잘못하는 대표적인 경제정책이 무엇일까? 이 질문에 기자는 서슴없이 물가정책을 꼽는다. 2008년 정권 출범 직후 사재기 단속과 ‘52개 MB 품목’을 발표하는 것으로 물가관리를 시작하자 기자는 “자칭 경제대통령이 이끄는 새 정부의 물가정책이 고작 이거냐”고 칼럼을 통해 비판했다. 규제전봇대를 뽑고 친기업 정책을 펴겠다는 데는 공감했지만 물가 대응만큼은 대선 때 외치던 시장주의, 실용주의와 도무지 거리가 멀었다.

前정부보다 훨씬 못한 경제정책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디플레 위협이 시작되면서 물가 문제는 잠깐 잠복했다. 하지만 그 파고가 지나가자 착착 에너지를 축적해오던 물가 후폭풍이 작년 하반기에 다시 몰려왔다. MB식 물가정책도 그대로 재연됐다. “기름값이 묘하다” “공정위는 물가당국이다” “주유소 500곳 장부를 들여다보겠다” 등 정책이라 하기조차 민망한 윽박지르기 일색이었다. 많은 사람이 잘못된 정책이라 지적했지만 정부는 귀를 열지 않고 있다.

경제학계에서 통화주의 진영과 실물주의 진영은 사사건건 입씨름을 하지만 인플레 이론에서만큼은 확고한 의견 일치를 보인다. 밀턴 프리드먼은 이를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인플레는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다.” 그의 얘기를 좀 더 들어보자.

“언제나 정부 관리들은 인플레를 유발한 책임을 회피하며 변명거리를 찾는다. 탐욕스러운 기업가들의 가격인상,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 과소비하는 소비자들, 기름값을 올리는 아랍 지도자들, 불순한 날씨 등이다. 이런 요인들은 개별상품의 값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일반물가의 상승을 가져올 수는 없다…전방위적이며 지속적인 인플레는 오직 돈이 많이 풀린 결과다. 정부 탓이다…가격규제가 인플레의 처방이 될 수 없음은 명백하다. 거꾸로 기대인플레를 부풀려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그럼에도 이 처방이 반복되는 것은 단 하나의 이유, 근시안 때문이다.”(‘화폐경제학’에서)

한 문장 한 문장이 뒤죽박죽돼 버린 이 정부 물가정책을 질타하는 비수 같다. 2008년 물가는 석유, 철강 등 개별 품목의 공급 문제였다. 반면 지금처럼 김치찌개값, 미용실 커트 요금 등 오를 이유가 없는 개인서비스 요금이 일제히 오르는 것은 돈이 풀려 ‘총수요가 물가를 끌고 있다’는 뜻이다. 임금인상 압력도 곧 나타날 게다.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저금리-고환율의 단맛에 취해 돈의 고삐를 너무 오랫동안 늦춰둔 탓이다. 올해는 2001년 이후 만 10년 만에 4% 넘는 소비자물가를 기록할 것 같다. 그러나 이 정부는 생각이 다른 것 같다. 정부는 작년 말 새해경제운용계획을 짜면서도 5%대 고성장을 얘기했다. 금리 환율 등 거시변수는 크게 손보지 않고 미시정책으로 물가에 대응하겠다는 의미였다.

아직도 엉뚱한 소리를…

지금도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25일 거시정책협의회를 열고는 물가에 대해 “공급 측 요인에서 비롯된 물가상승 추세에 최근 수요(화폐증발) 측 요인이 가세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최근 가세’가 아니잖은가? 통화량이 물가에 반영되려면 12∼18개월 전부터 돈이 풀려야 한다. 근원물가 등 수요압력에 대한 지적이 본격화된 것도 작년 하반기부터다. 굳이 ‘최근’을 찾자면 정부가 ‘총수요 관리’를 처음 언급한 게 6월 10일로 아주 최근이다.

레닌은 “자본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은 화폐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라 말했고 존 M 케인스는 ‘정확한 판단’이라고 평했다. 물론 한국의 물가상황이 그런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엄중한 문제다. 정부는 어법부터 고쳐야 한다. 국민에게 너무 오래 단맛을 즐긴 탓이라고 솔직히 고백하고, 이제부터라도 긴축의 고통을 함께 이겨 나가자며 팔을 걷고 앞장서야 한다. 그게 물가를 잡고 정책 신뢰도 회복하는 길이며 공복으로서 올바른 자세다.

허승호 편집국 부국장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