是故는 앞의 말을 순하게 잇는 접속어다. 雖∼는 ‘비록 ∼하더라도’로, 양보절을 이끈다. 辭命은 왕이나 제후로부터 專權(전권)을 위임받은 使者(사자)의 言辭를 말한다. 여기서는 초청의 언사를 말한다. 군주가 在野(재야)의 어진 사람을 초청하는 것을 徵召(징소)라고 한다. 不受는 제후의 초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말이다. 是는 앞에 나온 不受也者를 다시 가리킨다. 不屑(불설)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기뻐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본래 屑(설)은 깨끗하게 여긴다, 汲汲(급급)해한다는 말이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不屑은 깨끗하게 여기지 않아 급급해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就는 官職(관직)에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옛날에는 관직에 나아가 일하는 것을 就職(취직)이라 했는데, 오늘날에는 일반 직장에 나아가는 것도 모두 就職이라고 하게 되었다.
맹자는 백이의 태도를 협애하다고 했지만 去就(거취)와 관련해서 백이의 태도를 하나의 모범으로 본 것은 분명하다. ‘萬章(만장)·하’를 보면, 백이는 눈으로는 나쁜 빛을 보지 않고 귀로는 나쁜 소리를 듣지 않으며, 섬길 만한 군주가 아니면 섬기지 않고 부릴 만한 백성이 아니면 부리지 않으며, 세상이 다스려지면 나아가고 세상이 혼란하면 물러갔다. 그렇기에 백이의 풍모를 들은 자들은 頑惡(완악)한 자라도 청렴해지고 懦弱(나약)한 사내라도 뜻을 세우게 된다고 했다. 이런 介潔(개결)한 인물이 지금 시대에는 없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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