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종구 스포츠레저부
출범 28년째인 한국 프로축구의 암울한 현주소다. 한마디로 막 가자는 분위기다. 승부조작 파문에도 경기장을 찾아 응원전을 펼치던 팬들은 ‘답답하다. 도대체 이젠 누굴 믿어야 하느냐’며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이 지경인데 프로축구연맹은 계속 헛발질만 하고 있다. 11일 발표한 대책안이란 것도 당초 예정된 2013년 승강제 도입 등 승부조작과는 직접 관련성이 없거나 구체성이 떨어지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수철 상주 상무 감독이 선수 가족 협박 및 금품수수로 구속됐고 선수가 9명이나 끌려가 상무 출신만 모두 19명이 승부조작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는데도 정몽규 연맹 총재는 “상무 퇴출은 없다”고 일찌감치 못 박아 논란을 키웠다. 선수들의 군 문제 해결 등 득이 많았던 상무의 퇴출은 쉽지 않은 결정일 것이다. 하지만 승부조작의 한 축을 형성한 상무에 대한 장기적인 존폐 논의나 대안 마련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범죄학에 ‘깨진 유리창 이론’이 있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내용이다. 경영학에선 고객 한 사람의 불만을 방치하면 조직 전체가 망가질 수 있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지난해 중반 승부조작 소문이 나돌았을 때 선수는 “안 했다”고 했고 지도자와 구단, 연맹은 “증거 없다”고 손을 놨다. 첫 유리창이 깨졌는데 프로축구계는 ‘이번 위기만 넘기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대처했다. 결국 더 많은 유리창이 깨져 프로축구의 존폐 위기까지 온 셈이다. 처음부터 대처했더라면 선수를 희생양 삼고 교묘하게 빠져나간 ‘몸통’ 조직폭력배도 잡을 수 있었다는 게 검찰 쪽 생각이다.
그런데도 프로축구계는 이렇다 할 변화의 조짐이 없다. 연맹은 “승부조작에 적극 대처하겠다”고 주장할 뿐 납득할 만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극성팬들은 “리그를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러다 유리창이 모두 깨지게 생겼다.
양종구 스포츠레저부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