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서희경 한번 이긴 기억도 큰 힘… 티 박스 서니 편안… 코스 눈에 훤히 들어와 공격적 플레이
유소연은 11일 4라운드를 15번홀까지 마친 뒤 일몰로 중단했다. 3개홀을 남긴 상황에서 서희경에게 1타 뒤졌다. 숙소에서 그는 오후 10시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계속 다음 날 첫 번째 티샷을 해야 할 16번홀(파3)이 맴돌았다. 겨우 잠자리에 든 그는 다음 날 오전 8시 16번홀 티박스에 섰다. “하도 얼굴이 굳어 있으니까 캐디가 좀 웃으라고 하더군요. 평소대로 하라고 했어요.”
그래도 이 홀에서 티샷은 벙커에 빠졌다. 위기였다. 절묘한 벙커샷으로 공을 컵에 바짝 붙여 파를 한 뒤 17번홀(파5)에서도 파를 기록했다. 이제 18번홀(파4)에서 꼭 버디를 해야 서희경과 동타를 이룰 수 있었다. 그는 세컨드 샷을 핀 2m 지점에 떨어뜨렸다. “다른 선수들이 싫어하는 슬라이스 라인을 좋아하거든요.” 버디를 낚은 그는 18개 홀 연장전을 떠올렸다. “예전 세리 언니가 그랬잖아요. 그런데 3개홀 연장이라고 하더군요. 그것도 방금 돌았던 바로 그 세 홀에서요.”
▼LPGA 2년 출전권 획득… “美투어 고민해 볼 것”▼
“화장실 좀 다녀오면 안 될까요?”
우승 비결 세 가지를 꼽아달라고 하자 “욕심을 내지 않았고, (신)지애 언니 캐디를 했던 딘 허든과 호흡이 잘 맞았으며 소속사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고 말했다. 캐디 허든은 까다로운 그린과 고도가 높아 거리 계산이 어려운 상황에서 적절한 조언을 해줘 혹독한 러프와 3퍼트를 피할 수 있었다는 것.
이번 우승으로 유소연은 당초 알려진 것과 달리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2년 출전권을 보장받았다. 이번 주 안에 신청하면 당장 올해부터 미국 무대에서 뛸 수도 있다. 유소연은 “원래 미국 투어에 가려면 퀄리파잉 스쿨을 거쳐야 한다. 굉장히 힘들고 두려운 과정인데 건너뛰게 됐다. 구체적으로 진로를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다.
“영어 공부에도 도움이 되는 미국 드라마 CSI, 보스턴 리걸, 모던 패밀리를 빨리 보고 싶다”는 유소연은 로스앤젤레스에서 며칠 머물다 다음 주 에비앙마스터스가 열리는 프랑스로 떠난다. “로스앤젤레스 근처에 큰 아웃렛 매장이 있대요. 꼭 가보고 싶어요. 호호.” 메이저 챔피언 유소연은 어느새 쇼핑을 즐기는 그 나이 또래가 돼 있었다.
콜로라도스프링스=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