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녕 논설위원
정치인의 말은 다의적(多義的)이다. 겉뜻과 속뜻을 함께 살펴야 한다. 유 최고위원의 발언도 마찬가지다. 언뜻 들으면 MB와 박 전 대표의 상생(相生)을 강조한 것 같지만 뒤집어 보면 박 전 대표의 앞길에 걸림돌이 된다면 언제든 MB의 탈당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경고로 들린다. 다른 친박 인사들의 의중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민주화 이후 4명의 역대 대통령은 모두 임기 전에 여당을 탈당했다. 아직은 현직 대통령의 탈당 얘기가 나올 시기는 아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차기 대선이 있던 해 10월,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11월,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은 2월 탈당했다. 실제 탈당하기 한두 달 전부터 심심찮게 탈당이 거론된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올 3월부터 MB 탈당 얘기가 비집고 나온 것은 퍽 이례적이다. 나쁜 징조일 수도 있고, ‘예방주사’가 될 수도 있다.
현직 대통령의 탈당은 5년 단임 대통령제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이유가 무엇이든 정당정치와 책임정치의 취지에 반한다. 선진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악폐다. 나는 어떤 이유로도 한나라당 사람들이 MB의 탈당을 요구해서는 안 되고, MB 또한 끝까지 한나라당과 운명을 같이하기를 바란다. 그런 선례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한국 정치사에 의미 있는 한 획을 그을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탈당하면서 “야당은 대통령 공격이 선거 전략상 유리하게 돼 있어 대통령은 집중 공격의 표적이 된다. 여당 또한 대통령을 방어하는 것보다 차별화해 거리를 두는 것이 유리하게 생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구조에 빠지지 않으려면 대통령이 여당 후보에게 도움이 될 만큼 국민의 지지가 높아야 하지만 역량이 부족해 그렇지 못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한나라당과 MB가 이 시점에서 새겨볼 만한 말이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