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렬 한국외국어대 중국학부 교수
국공내전 과정에서 국민당과의 1, 2차 국공합작, 민족자산가와 지식인을 끌어안았던 신민주주의론, 덩샤오핑의 시장지향적 개혁, 중국공산당이 기업가도 포용하겠다는 장쩌민의 ‘3개 대표론’ 등은 모두 유연한 접근으로 성공한 사례다. 중국경제의 발전 원동력은 ‘실천으로 진리를 검증’하고,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잡는 데 열중했던 중국공산당의 실용성과 유연성이다. 반면 이념적 좌경화는 중국을 재앙에 빠지게 했다. 마오쩌둥의 정책 실패로 2000만 명 이상이 아사했던 대약진운동의 조급함, 이념적 잣대로 파괴와 혼란의 정치 광풍을 몰고 왔던 문화대혁명, 그리고 톈안먼 사태에 이르기까지 모두 중국 지도부의 좌파적 이념 경직성이 불러온 불행이었다.
개혁개방 이후 30여 년 동안 연평균 10%의 초고성장을 지속해온 중국의 개혁 피로 현상은 심각하다. 농촌에서 도시로 무작정 진입한 2억 명에 이르는 농민공 중 상당수는 법정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처우와 열악한 근무환경에 시달리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의 자녀 역시 저임금 업종의 기회만이 열려 있을 뿐 계층 상향 이동의 희망이 거의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개혁 초기에 새로 열린 기회를 통해 부를 축적했던 관료와 기업의 결탁 구조는 더 이상의 개혁을 꺼리고 있다. 더도 덜도 말고 이대로가 좋은 것이다.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9명의 이해관계 조율이 그대로 중국의 모습을 결정하는 형국이다. 견고한 이해관계를 깨 보자는 원자바오 총리의 ‘정치개혁’ 호소가 먹혀들기 어려운 이유다.
중국의 이념적 경직화와 팽창적 국가주의 외교는 북한으로 하여금 국제정치적 도박의 유혹에 빠지게 했다. 또 전쟁의 폐허를 딛고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룩한 한국을, 세습정권 유지를 위해 기아와 인권의 사각지대로 주민을 몰고 있는 북한정권과 같은 위치로 폄하해 ‘어느 편도 들지 않겠다’는 중국의 독선도 야기했다.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고 중국을 주요 2개국(G2) 반열에 올려놓은 중국공산당의 90년 연륜은 중국이 직면한 개혁 피로와 체제 스트레스를 정치개혁으로 풀어갈 수 있어야 한다. 대외적 힘의 분출과 ‘홍색 분위기’ 연출은 방법이 아니다.
오승렬 한국외국어대 중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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