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나라당 행태를 보면 이 나라의 국정을 책임지고 이끌어 가는 집권여당이라는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는다. 한나라당은 그제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심사경과보고서 채택을 스스로 포기하는 비겁함을 드러냈다. 조 후보자의 국가관 및 안보관에 심각한 문제가 있고, 4건의 위장전입 사실까지 밝혀졌으니 부적격 의견을 달아 보고서를 채택한 뒤 국회 본회의에 상정해 인준을 부결시켰어야 했다. 무슨 꿍꿍이속인지 모르지만 이런 정당한 의정활동을 회피하라고 국민이 한나라당에 절반이 훨씬 넘는 국회 의석을 준 것이 아니다.
한나라당 의원 시절 여대생 성희롱 발언 파문을 일으킨 강용석 의원(현재 무소속)에 대한 국회의원직 제명안 처리를 무산시킨 것도 정도(正道)에 어긋난다. 제명안 가결에 필요한 재적의원 3분의 2의 찬성을 얻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지만 부결이든 가결이든 본회의 표결에 부치는 것이 옳은 태도다. 강 의원 건과 조 후보자 건을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서로 맞바꾸는 거래를 했다는 얘기가 일각에서 나온다. 머지않아 있을 김준규 검찰총장 후임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민주당의 협조를 얻기 위해 한나라당이 조 후보자에 대한 보고서 채택을 보류했다는 말도 들린다. 어느 쪽이라도 사실이라면 저질 야합이다.
한나라당은 지금 줏대도, 원칙도 내팽개친 기회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정신이 죽은 정당”이라는 개탄의 민성(民聲)이 커지고 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대형 태극기를 밟고 선 사진이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실려도 말 한마디 하지 않은 한나라당이다. 이런 썩은 눈, 마비된 의식으로 무슨 재집권을 한단 말인가. 7·4전당대회 ‘경선 룰’을 정한 당헌이 법원에 의해 효력이 정지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빚어졌다.
이런 상태에서 새 지도부가 선출된들 크게 기대할 것이 있겠는가. 한나라당이 원칙도 없이 비굴한 정치나 하다 보면 돌아올 것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참담한 패배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