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활 논설위원
외환위기 이후 금융 구조조정에 들어간 공적자금은 168조 원을 넘는다. 대규모 나랏돈 투입은 급한 불을 끄는 데 도움이 됐다. 단군 이래 가장 많은 돈벼락이 쏟아지면서 경기부양책의 성격도 지녔다.
반면 국민의 혈세가 뿌려지면서 파렴치한 기업인, 정치인, 관료, 금융감독자들의 부패와 유착도 따랐다. ‘공적자금 시대’는 사회 각 분야에서 폭발적 권력 이동이 진행되던 시절이었다. 신(新)권력층과 연줄이 닿는데도 공적자금을 못 챙기면 바보라는 말이 나돌았다. 다수 국민이 힘들어했지만 다른 한 편에선 일생일대의 인생역전에 성공한 사례도 눈에 띄었다.
올 3월 국회에서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정부는 10조 원 규모의 저축은행 구조조정 특별계정을 마련했다. 그러나 부산 보해 삼화 전일저축은행 같은 부실 저축은행의 기존 공시자료는 대부분 엉터리로 드러났다. 이미 확보한 돈으로는 부족하고 하반기 중 추가 재원을 마련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들어간 나랏돈은 다 어디로 갔는지 납세자인 국민은 분통이 터질 일이다.
그렇다고 부실 처리를 질질 끌다가는 충격과 비용은 더 커질 것이다. 냉정히 판단하면 추가 대책이 불가피할지 모르지만 선행조건이 있다. 10년 이상 저축은행에 투입된 공적자금 낭비와 유착, 부패의 커넥션 전모를 드러내고 전직이든 현직이든 엄중한 책임을 묻는 일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들이 국내외에 숨겨놓은 검은돈을 추적해 환수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자유기업원이 분석한 올해 ‘세금 해방일’은 3월 18일이었다. 평균적으로 우리 국민이 1년간 버는 돈 중 두 달 반 이상의 소득이 세금으로 들어간다는 얘기다. 피땀 흘려 납부한 세금과 직결되는 공적자금으로 ‘그들만의 파티’를 흥청망청 즐기다 다시 밑 빠진 독만 남긴 사람들을 그냥 놔두고 넘어갈 수는 없다.
공적자금 추가 투입에서 정부가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이미 ‘동네북 신세’로 전락한 힘빠진 정권, 그것도 가치와 신념의 동지(同志)는 찾기 어렵고 이해타산만 따지는 동업자만 득실거리는 정부 여당의 한심한 꼴을 보면 서슬 퍼렇던 10여 년 전과 여건은 다르다. 하지만 정권 말엽일수록 ‘마지막 한탕’을 노리는 인간도 나오게 마련이다. 공적자금 미스터리가 재연되는 것을 막으려면 정부의 정책 결정에서 국회 동의까지 전 과정에서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최선이다.